“나는 까마귀입니다. 나의 날개는 위축되어 있습니다. (…) 빛나는 것에 대한 감각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나는 돌산 속에 모습을 숨기고 싶어 하는 까마귀입니다”라고 말했던 이가 카프카였고, 또 다른 소설 ‘시골의 혼례 준비’에서 “나는 침대에 누워 있을 때, 가끔 커다란 딱정벌레나 아니면 풍뎅이의 모양을 하고 있지 않는가 하고 생각한다”라고 서술했던 이 역시 카프카였다. 그리고 ‘변신’은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주인공)가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침대 안에서 자기가 한 마리의 징그러운 벌레로 변신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느닷없는 변신 이야기다. 그레고르는 어째서 벌레로 변신하는가. 일차적으로 빚진 자의 숙명적인 굴레 때문이었다. 5년 전 파산한 아버지는 그레고르가 일하는 가게 주인에게 빚을 짊어졌다. 이에 그레고르는 빚도 갚아야 하고 또 가족의 생계도 꾸려야 하는 처지여서 열심히 의류 외판원으로 일한다. 상과대학을 나와 군대 생활을 마친 그레고르는 성실한 세일즈맨으로 일하면서 머잖아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며, 또 음악에 소질이 있는 누이동생 그레테를 음악학교에 보내줄 생각까지 하면서 나름의 희망을 일구며 살아가는 건실한 청년이었던 것이다. 건실하게 노력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억압의 굴레였을까. 정녕 돈이 문제였을까.
벌레로 변한 다음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정상인으로서 돈을 벌 수 있을 때 그는 가게에서는 믿음직한 세일즈맨이었고, 가정에서는 사랑받는 아들이며 오빠였다. 하지만 돈을 벌지 못하고 벌레가 된 그는 철저한 소외자이며, 해충에 불과할 따름이다. 더 이상 가족의 일원일 수도 없었으며, 특히 아버지의 가학적 공격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들과 오빠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단지 돈벌이 수단으로서만 세일즈맨을 치부한 비인간적인 고용주의 태도, 욕망하는 기계인 자본주의의 거침없는 톱니바퀴…. 이 정도라면 사람의 상황이라기보다 벌레의 상황이라고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일종의 ‘벌이-벌레’ 같은 비극적 정황을 카프카는 다소 비현실적인 시점에서, 아주 냉혹한 문체로 그려냈다. 1950년대에 이 땅에서 전혜린은 “돈이 떨어지다. 배는 다소 고프지만 나는 즐겁다. 오늘은 가을 하늘이 멋이 있었고….” 운운한 적이 있다. 과연 오늘날에도 그렇게 쓸 수 있을까.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