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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주부 한가영(29)씨는 잇따라 들리는 ‘가습기 살균제 치약’ 소식에도 마음이 가볍다. 3년 전 독일에서 유학 중인 여동생으로부터 선물받은 치약을 사용한 후부터 해외치약만 고집해 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치약보다 강하고 개운한 느낌을 잊지 못해 써왔지만, 이제는 기능이나 안전성 측면에서도 국내 제품보다 더 우수할 것이라는 생각에 구매대행 사이트나 해외 직구를 통해 직접 주문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선물받은 치약과 같은 종류의 치약만 쓰던 한씨는 요즘엔 태국, 홍콩, 이탈리아 등에서 쓴다는 유명 치약을 사서 돌려 쓰는 데 재미까지 생겼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국내 일부 치약에도 들어가 있다는 정부의 발표 이후 해외에서 생산, 판매되는 치약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4일 인터넷 쇼핑몰 G마켓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 사이 해외 치약 판매량이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21% 늘었다. G마켓의 한 관계자는 “수입 치약 중 일부 상품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판매량이 늘어난 결과”라며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치약에까지 후폭풍이 분 셈”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치약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함유됐다는 발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치약의 공포’에 떨고 있다. 이들은 해외 직구를 통해 대안을 찾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해외 치약 역시 국내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
미취학 자녀를 둔 직장인 장모(37)씨는 “마트에 치약을 들고 가면 환불해 준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러면 뭐하냐”며 “가습기 살균제 사태 때도 뒤늦게 대책을 마련했는데 이번에도 어떤 피해자가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며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어 “이번 기회로 아예 생활용품은 국내 제품은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불안감 때문인지 인터넷 중고장터 등에서는 “독일 아조나 치약 판매합니다”, “마비스 치약, 미개봉. 보라색은 8000원입니다” 등의 게시물이 부쩍 늘었다. 아직 쓰지 않은 치약을 팔려는 사람과 이런 치약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문의글도 상당하다. 가격도 국내 치약에 비해 개당 8000∼1만원 정도로 높게 거래되고 있지만 해외 치약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해외 치약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국내에서 만들어진 치약보다 해외 치약이 ‘안전성’ 측면에서 훨씬 믿음이 간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인터넷 등을 통해 소비자가 직접 해외에서 구매한 치약에 대한 안전성을 확신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유통되는 치약은 CMIT/MIT 등 불법적인 성분이 함유됐는지 확인하지만, 소비자가 해외 여행지에서 사온 치약이나 해외 직구 사이트 등을 통해 구매한 치약 등은 정식 수입절차를 밟지 않아 확인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치약이 화장품으로 분류돼 있어 보존제로 CMIT/MIT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CMIT/MIT는 국내에서도 화장품에 대해서는 물에 씻는 제품에 한해 함량이 최대 15ppm까지 허용된다.
김영수 고대구로병원 예방치과학 교수는 “해외 치약도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것이 많아 국내 치약에 비해 특별히 안전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해외 치약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만큼 정부나 학계에서도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