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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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세련된 디자인… 가구에 한국 전통미 담다

건축가 겸 가구디자이너 김백선씨
미술과 건축과 가구는 모두 공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건축가가 가구를 디자인하는 것은 이미 일반적인 현상이다. 가구와 공간의 조화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김백선(50·본명 김훈)도 건축과 가구 디자인을 넘나들고 있다. 한남동 유엔빌리지 빌라, 롯데월드타워의 레지던스와 커뮤니티 공간 설계로 주목을 받은 그가 이번에는 이탈리아 가구업체와 협업으로 가구를 내놓았다. 그가 디자인하고 이탈리아 업체가 만들었다.

“먹을 적신 붓과 연필, 목탄의 드로잉은 선과 면 자체로 작품이 되기도 하고, 집을 지어내기도 하며, 공간 안에 가구와 생활 소품을 놓는 선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서랍장 앞에 선 김백선 작가. 산행을 즐긴다는 그는 자연은 무수한 생각들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캔버스와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그는 그동안 한국의 미감을 발현한 현대적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에는 그 공간 안에 ‘놓이는 것’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공간은 그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 뿜어내는 기의 흐름이 담겨 있는 곳이다. 건축과 가구 디자인은 그것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의 가구는 이탈라이 대표 가구 기업인 프로메모리아, 포로, 판티니가 제작을 도왔다. 특히 프로메모리아는 ‘가구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며 유럽 최상급 가구 브랜드로 꼽힌다.

“국내 장인들과 협업한 나의 작업도록을 프로메모리아의 수장이자 디자이너인 로메오 소치가 본 것이 인연이 됐다. 포로와는 고급주택 가구작업을 하면서 알게 됐고, 수전 브랜드 판티니는 내가 좋아서 함께 했다.”

멀리 있는 산을 바라보며 쉴 때 어울리는 오브제를 지향한 암체어. 가격이 수천만원에 이른다.
그동안 그는 장인들과의 협업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다. 이탈리아 등 세계명품 브랜드의 저력이 장인들의 손에 의해서 나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무형문화재 장인과의 협업을 통해 ‘시간과 기다림에 대한 철학’, ‘보이지 않는 가치를 지켜내는 강기(剛氣)’를 보았다. 이탈리아 장인들과 협업을 통해서도 장인정신이야말로 영원히 칭송받을 만한 가치라는 것을 절감했다.”

그는 가죽과 금속 장인의 만남이 그의 가구의 포인트라고 했다. 알루미늄에 브론즈를 ‘피니싱’해 나무의 질감을 드러내게 하거나 가죽과 금속의 짜맞춤은 장인정신 그 자체다.

“모서리를 만들어내는 선의 유려함, 수평재와 수직재의 만남이 만들어내는 결구법, 부분 부분을 이루는 다른 소재와의 어우러짐에서 공존의 미학을 본다.”

브론즈로 만든 플로어 스탠드 조명 몸체에서는 땅에 뿌리내린 나무가 연상되고, 업라이트 조명이 발산한 빛은 만개한 매화의 모습이다. 스탠드는 달빛 창가에 비친 촛불을 연상시킨다.

“‘서로 사귀어 오감’을 이루는 통섭의 뜻을 담았다.”

결국 그는 붓 대신 컴퍼스와 자를 잡았지만 동양화의 감성을 버리지 않았다. 한옥 창살 문양을 확대, 복사해 공간 구성을 하기도 했고, 국수 가락을 차용한 건축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의 건축은 한마디로 ‘한국적 미감이 발현된 현대적 공간’이다. 그가 설계한 건물이나 디자인한 실내는 동양적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수묵화 같은 공간으로 나타난다. 가구도 매한가지다. 사방탁자, 서랍장, 서안 등 한국의 전통가구에서 단순하고도 세련된 선을 가져왔다. 판티니가 제작을 협찬한 검은색 수전류는 먹과 벼루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전통은 우리 삶 속에 녹아들어 그로부터 위로받고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 생명력을 갖게 된다.”

그는 한국에서도 디자이너들이 주도하는 한국적 디자인 문화를 브랜드화하고 싶다고 했다. 단순히 제품 중심의 디자인, 비즈니스를 위한 디자인보다 디자인이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위해 젊은 작가들과 지속적인 만남도 갖고 있다.

“일본 디자이너 하라 겐야가 ‘무인양품’을 통해 일본적인 디자인 문화를 만들었듯이, 우리 디자이너들이 주도적으로 한국적인 디자인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의 가구는 명품브랜드를 통해 전 세계로 진출하게 된다. 가구 분야에서 세계 유명 브렌드와의 협업이 국내에선 처음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가구들은 10월30일까지 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된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