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국가기관이 그 역사 배경과 연조에 연관된 상당수의 값진 미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서 중요한 사회교육적 의미를 갖는다.”
미술기자 출신 원로 미술평론가인 이구열(84) 선생이 2002년 발간된 ‘국회도서관 소장미술품 도록’ 서문에 적은 말이다. 국회 소장 미술품의 역사는 국회와 입법부의 역사이기도 하다. 2000년대 들어 국회사무처가 따로 예산을 책정해 구입하거나 기증받은 작품들은 오랜 소장품에 비해 역사성에서 뒤지지만, 신구(新舊)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수집 사연에 현대사의 뒷얘기 담긴 국회 미술품
국회가 개원한 지 올해로 68년이 된다. 국회가 미술품을 수집한 역사도 그에 버금간다. 주요 작품 수집 과정에는 흥미로운 현대사의 뒷얘기들이 담겨 있다.
국정감사가 한창이던 13일 오후 국회 5층 중앙홀에서 한 여성이 월전 장우성 화백의 대작 ‘백두산 천지도’를 올려다보고 있다. 국회 3층 의원식당 옆에 걸려 있던 이 그림은 5층으로 옮긴 뒤 가운데가 뚫린 7층 건물인 국회의 한가운데서 건물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정부미술은행 소장. 이제원 기자 |
뿌리깊은나무(이만익). 본관 4층 정부미술은행 소장 |
한국적 소재의 판화를 즐겨 그린 이만익 화백의 ‘뿌리 깊은 나무’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국회의원 재직 시절 기증했다.
이 화백은 1988년 서울올림픽 미술감독을 지냈는데, 정 회장은 당시 올림픽 유치위원장이었다. 1983년작인 이 작품은 올림픽에 걸맞은 ‘화합’이라는 제목을 달고 1989년 목판화로 다시 제작됐다.
다소 보수적이었던 국회 컬렉션에 변화가 생긴 계기는 여야 정권교체였다.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열린우리당 출신 김원기 전 의장은 2005년 초 집무실에 새 그림을 걸고 싶다고 요청했고, 국회사무처가 새로 구입한 작품 6점은 대표적인 민중미술가 2인, 제주 4·3 항쟁 연작화로 유명한 강요배 작가와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몰려 대표작 ‘모내기’를 압수당한 신학철 작가의 작품이었다. 당시 신 작가는 “핍박만 받던 내 작업들이 권력의 상징인 국회의장실에 걸려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고 한다.
정양사망금강산(강요배) 본관 국회의장실, 정부미술은행 소장 |
화실(김인승) 본관 7층, 정부미술은행 소장 |
작품 수가 많고, 수집 초기에는 체계적으로 관리할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던 만큼 수집 경로를 파악할 수 없는 작품도 다수다. 현재 본관 7층 국회사무처 사무공간에 걸려 있어 일반인 접근이 불가능한 김인승 화백의 ‘화실’은 1937년작으로 한국현대미술사에서 빠질 수 없는 귀한 작품이지만, 소장 경위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현재는 정부미술은행에 소유권을 넘겼다.
◆젊어진 2000년대 컬렉션… 설치미술, 추상, 팝아트까지
19대 국회 이후 국회가 새로 구입한 미술품들은 젊어졌다. 국회는 할당된 미술품 구입 예산을 들여 ‘열린 국회’ 사업의 일환으로 미술품들을 임차·구입하고 있으며, 기증도 받고 있다. 새로 소장하게 된 작품 중엔 설치미술, 팝아트, 추상 작품이 많아 기존 소장품들과 대조를 이룬다.
앤젤솔져(이용백). 의원회관 2층, 국회사무처 소장 |
과일나무(최정화)·헌정기념관 앞, 국회사무처 소장 |
하지만 역사와 전통이 오랜 국회의 문턱을 넘은 최근 미술품에 대해선 반응이 엇갈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국회 본관 앞에 설치됐다가 현재는 헌정기념관 앞으로 자리를 옮긴 최정화 작가의 ‘과일나무’다. 높이 7m, 지름 2.5m, 무게 2.5t의 대형 설치미술인 이 작품은 처음 설치될 때부터 말이 많았다. 해외 유수 비엔날레와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한 작가의 예술성은 인정하지만, 원색의 알록달록한 과일·채소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 국회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도 많았다.
설치 과정에 대한 언론의 문제제기도 있었다. 이 작품은 제작과 운반, 설치에 8000만원이 든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사무처는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으로 집행됐고 국회가 직접 구입한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