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호텔의 변신, 특급호텔 음식을 골목길에서?

문턱 낮춘 호텔 차별화 콘셉트
스테이크하우스
‘골목길’은 그 단어 자체로 정겹다. 구불구불하게 난 작은 길에서는 생선구이, 김치찌개 냄새가 풍겨 미각을 자극한다. 서둘러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은 잊고 저절로 발길을 향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골목길의 모습도 점차 변화했다. 갈비집, 국숫집 대신 파스타와 수제맥주가 자리를 차지했다. 길 위의 셰프들은 정통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없었던 ‘그 길’만의 느낌을 접시에 담아 내놓는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이 가로수길, 샤로수길, 경리단길 등 새로운 골목길을 찾는 것도 당연하다. 여기에 저렴한 비용에 비해 큰 만족을 뜻하는 ‘가성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골목의 식당들은 다양한 맛과 개성으로 고객을 끌어들였다. 반면 오랜 시간 동안 관리해 온 품질로 정제된 음식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세웠던 호텔 레스토랑의 불안감은 골목길의 변천과 함께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 호텔이 국내 호텔 중 처음으로 ‘골목길’로 진출했다. 호텔이 위치한 도로명 주소를 가져와 ‘소월로 322’로 명명된 이 골목길 프로젝트는 ‘호텔 밖의 호텔’을 지향한다. 호텔의 공간은 확장됐지만 이름도, 메뉴도 그동안 호텔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음식들이다.

초밥 전문점인 ‘카우리’, 다이닝레스토랑 ‘스테이크 하우스’, 철판요리를 즐길 수 있는 ‘테판’, 이자카야 스타일의 꼬치구이 전문점 ‘텐카이’는 물론 오픈형 플라워숍인 ‘피오리’를 론칭했다. 고급스럽지만 영 불편했던 호텔의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하는 시도가 엿보인다.

그랜드하얏트의 한 관계자는 “기존의 엄숙하고 딱딱한 호텔 레스토랑 공간 구성을 탈피해 호텔 최초로 ‘골목길’ 콘셉트를 도입했다”며 “파격적인 변신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나라 미식문화의 급속한 발달에 발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테판

이 가운데 철판요리 레스토랑 ‘테판’이 단연 돋보인다. 일식의 한 종류로 여겨졌던 ‘철판요리’의 시초가 ‘유럽’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일본식 조리법에서 벗어나 푸아그라, 양고기 등심, 랍스터 등 색다른 재료를 이용한 세계 각지의 요리를 경험할 수 있다. 남산 하얏트 호텔에서 20년 가까이 일해 온 이희준 셰프가 주방을 지휘한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있는 ‘유자’를 세계인들은 ‘유주’라는 일본어에 익숙하다”며 “철판요리 역시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유러피안 디시에 아시아적 터치를 가미했다”고 설명했다.

철판이라는 도구 위에서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이 셰프에게는 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새로운 고객층을 발굴하고, 고리타분한 호텔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예전에 일식은 젊은층보다는 중년층 이상의 고객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20∼30대 고객들이 증가하는 등 고객층이 다양해졌어요. 경리단길에 데이트 하러온 커플이나 친구들끼리 소월로에 위치한 식당을 보고 호기심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요.”

‘테판’의 요리는 기존에 익숙했던 철판요리와는 사뭇 다른다. 중국식 딤섬을 차용한 메뉴나, 싱가포르 스타일의 닭다리를 이용한 아차샐러드가 대표적이다. 아차는 주로 타이 샐러드에 쓰이는 재료로 동남아시아 음식에 흥미를 느끼는 젊은층을 겨냥했다. 여기에 고추장 소스를 이용한 고슬고슬한 비빔밥 역시 주목할 만하다. 철판을 즐기는 순서도 있다. 가장 먼저 판 위에 바질을 구우면 허브향과 불향이 묘하게 식욕을 자극한다. 이후 해산물, 육류 등을 차례로 올려놓고, 디저트로 마무리하는 것이 ‘테판’을 즐기는 ‘정석 코스’라고 할 수 있다. 
텐카이

“우리나라 사람들 삼겹살 집에 가서 삼겹살만 먹지 않잖아요. 여기에 쌈도 싸먹고, 된장찌개도 떠 먹다가 나중에 후식냉면으로 입가심하잖아요. 샐러드로 시작해 밥으로 마무리하는 것 등 식사의 전개 방법을 우리 식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에 시작했죠.”

그는 이어 셀로판지와 유사한 모양의 종이 ‘파필로테’를 이용한 메로구이를 추천했다. 쉽게 말하면 ‘종이에 둘둘 말아 익힌 생선요리’다. 파필로테에 싼 메로를 300∼400도의 철판에 놓고 익히면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식욕을 당긴다. 
과도한 서비스와 높은 가격으로 문턱이 높다고 여겨졌던 특급호텔이 ‘골목길’이라는 공간을 통해 진입장벽을 낮췄다. 셰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편안함과 기존의 음식보다 낮아진 가격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서울 남산 하얏트 호텔 제공

남산 하얏트 호텔뿐만 아니라 다른 특급호텔 역시 새로운 시도 중이다.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는 거리에서만 볼 수 있던 ‘푸드트럭’을 호텔 한복판에 등장시켰다. ‘왓 더 트럭’이라는 이름의 푸드트럭을 더 라운지 야외가든에 설치한 것이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끼니를 때우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왓 더 트럭’은 호텔 내부에 위치한 라운지보다 훨씬 자유로운 공간에서 음료를 즐길 수 있다. 또 호텔업계에서 최초로 햄버거 배달 서비스를 도입해 집에서도 호텔 셰프가 만든 프리미엄 버거를 맛볼 수도 있다. 한 세트만 시켜도 동대문역을 기준으로 반경 5㎞까지 배달해준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