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 대미 외교라인과 미국 국무부 전직 관료들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21일부터 이틀간 비공식 대화를 가졌다. 북한에선 한성렬 외무성 부상과 장일훈 유엔주재 차석대사 등이, 미국에선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 조지프 디트라니 전 6자회담 차석대표 등이 참석했다. 북한 핵·미사일 개발 문제가 핵심 의제였다. ‘평화협정 체결 후 핵·미사일 문제 논의’라는 북한 입장과 ‘핵·미사일 개발 중단이 우선’이라는 미국 입장이 재확인됐다. 북한 측은 “현안을 다 얘기했다”고 했고, 미국 측은 “일부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한 것을 보면 세부 논의 과정에서 일부 접점을 찾았을 수도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 정부는 이번 협의가 민간 차원의 ‘트랙 2’ 대화로, 미 정부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며 “한·미 양국은 국제사회와 긴밀한 공조아래 강력한 대북 제재·압박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국제사회 대북제재의 판을 흔들려는 속셈이 엿보이는 상황에서 대북협상론이 부상할 가능성을 조기에 막으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북한은 보름 후로 다가온 미국 대선에 앞서 차기 정부 출범 이후의 국면 전환을 위해 간접대화 형식을 빌린 탐색적 대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대화 참석자들이 북·미 협상의 베테랑이어서 주목된다. 갈루치는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의 미국 측 수석대표였고 디트라니는 2005년 9·19 공동성명 채택 당시 대북협상특사였다. 한성렬은 오랫동안 유엔주재 차석대사를 지내면서 북·미 간 협상 창구 역할을 했다. 이들의 대화는 향후 공개적 대화를 염두에 둔 전초전 성격이라는 관측도 있는 만큼 무시해선 안 된다.
앞서 국방부는 2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상시 순환배치’를 공동성명에 넣으려다 불발에 그쳤다. 곧 가동되는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에서 논의한다는 방침이지만, 정부는 미국 측 기류를 읽지 못하고 의욕만 앞세운 탓에 엇박자를 빚었다. 당장에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압박을 강화해 나가는 게 급선무다. 정부는 한·미 간 대북 공조태세에 이상이 없는지 점검해볼 때다. 아울러 내년 초 미국 차기 정부가 출범하면 공개적인 북·미 대화의 장이 펼쳐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화를 통한 출구전략 모색 등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는 일에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사설] 북·미 비공식 대화 열렸는데 한·미 공조태세 이상 없나
기사입력 2016-10-24 00:22:29
기사수정 2016-10-24 00: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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