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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나를 알아가는' 전남 담양 빛담예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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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린 28일 전남 담양군 대전면 불태산 자락의 빛담예술학교. 오래된 전통한옥을 개조한 빛담예술학교의 마당에서는 목공수업이 한창이었다. 길이 30cm, 지름 15cm의 나무토막에 크기가 다른 못을 망치로 박는 수업이다.

“손목을 쓰지 말고 망치의 무게를 느끼면서 못질을 하세요. 정신을 집중하고 해야 합니다.” 박영호 교사는 못질 시범을 보이면서 학생들에게 정신 집중을 강조했다. 그동안 한번도 못질을 해보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2시간 정도 계속된 수업에서 손을 다치는 학생도 생겼다. 이 곳에서의 목공수업은 학생들이 연장을 잘 다룰 수 있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지를 계발하는 데 목적이 있다.

비슷한 시각, 33㎡크기의 교실에서는 7명의 학생이 리코더 연주 수업을 하고 있다. 며칠 후 공연하게 될 연주곡을 맞춰보고 리듬과 시창을 연습하느라 분주하다. 리코더를 분지 벌써 3년째다. 실력도 수준급이다. 선생님의 지도없이 ′콘체르토′(리코더를 위한 1악장부터 4악장까지)를 척척해낸다.

조현 지도교사는 “짜여진 수업이 아니라 그때 그때 학생들의 질문을 따라 자신들이 과제를 만들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음악수업을 하고 있다”며 “연주실력은 실력대로 늘고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생활 속 모든 것들을 음악과 연결해서 시도해 볼 수 있는 힘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학생 스스로 자신을 알아가는 슈타이너 교육이론 바탕

슈타이너 교육이론에 바탕을 두고 학부모들이 설립·운영하는 중·고등과정 빛담예술학교는 2014년 3월3일 이 곳에 둥지를 틀었다. 흔히 말하는 대안학교, 학교밖의 학교다. 그 싹은 두해 전에 트기 시작했다.

2012년 광주 북구 일곡동에 사는 초등생 자녀를 둔 학부모 6명은 고민에 빠졌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담양 푸른별자연학교의 방과후 수업에 다니던 자녀들이 5학년이 되면서 오후 시간이 빠듯해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됐기때문이다.

2012년 3월부터 학부모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매월 가족모임을 했다. 전북 변산 마실길 걷기도 함께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녀교육에 대한 생각을 공유해 나갔다. 시험을 치르고 등수를 매기고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나를 깨우는 학교는 없을까. 없다면 우리가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은 그저 소박한 꿈처럼 보였다. 학교를 만든다는 게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부모들 사이에서 공유한 이들의 꿈은 그해 여름날 구체화됐다. 푸른별자연학교 조정신 선생과 함께 대안학교 알아보기를 비롯해 청소년기에 대한 이해, 대안학교 탐방 등을 하면서 꿈은 점점 손에 잡히는 듯 했다.

래미학교 이민철 선생이 합류하면서 학교 설립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학교 설립까지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다. 가장 큰 문턱은 경제적 부담이었다. 일곡동 부근에 터를 잡으려했지만 부지가 너무 비싸 포기했다. 푸른별자연학교가 있는 담양으로 가기로 했다. 한옥집을 구해 리모델링을 했다. 마당에는 학생들이 채소를 직접 가꾸는 텃밭을 꾸몄다.

첫 입학 학생 6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12명으로 늘었다. 중학교 1학년 과정 5명, 중학교 3학년 과정 7명이다. 빛담예술학교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교육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은 자신만의 고유한 이상을 지니고 태어난다. 자신을 발견하고 그 이상을 찾아가는 학생들을 돕고자하는 것이 교육이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교육의 가장 중요한 방향이다. 이렇게 자신을 찾아가는 학생들에게 훌륭한 안내자가 자연이며, 예술로 보는 게 슈타이너다.

◆목공·리코더 수업···감정·사고 유연성에 도움

때문에 빛담예술학교의 배움과정을 보면 딱딱한 교실에서 뭘 가르치는 과목이 없다. 자연속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예술활동을 통해 나를 깨우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학교 과정에서는 지적인 앎보다는 신체의 성장에 중점을 두고 교육과정을 짰다.

리코더 수업의 목적은 호흡조절을 통한 감정과 사고의 유연함을 기르는 데 있다. 호흡을 조절하는 것은 사람의 감정과 사고를 조절하는 것과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 밝고 건강한 호흡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다양한 감정과 사고를 건강하게 다룰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다.

오미정 담임교사는 “때로 연습의 강도가 쎄고 틀린 부분이 지적되면 의기소침해 지기도 했지만 리코더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집중력이 높아지고 호흡도 길어지고 안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담빛예술학교의 교육과정에는 도구를 이용하는 과목이 많다. ‘뼈에 새긴 의지’라는 말이 있기때문이다. 청소년 시기는 신체적으로 뼈의 조밀도가 높아지며, 근육과 뼈의 상응관계가 강하게 발달하게 된다. 사람의 의지는 근육보다는 뼈에 깊이 새겨지는 특성이 있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신체를 근육을 동반한 뼈와 함께 조절하고 사용하는 법을 익히고 도구와 연장을 자유롭게 다루는 과정에서 동물을 뛰어넘는 인간적인 의지를 계발하게 된다.

학생들은 걸어서 등하교를 한다. 학생들은 매일 오전 8시20분 담양 대치시장 앞에서 모여 30분간 시골길을 걸어서 학교를 간다. 비가오나 눈이 오나 아직 한번도 도보 등학교 약속은 깨진적이 없다. 학생들은 날마다 한시간 동안 시골길을 걸으며 신체활동을 하게 된다.

중학교 3학년 과정의 배움과정을 보면 월∼금 오전 9시10∼50분 아침을 여는 시낭송과 나를 깨우는 절명상을 한다. 오전 10시부터 두시간동안 산책을 한다. 오후 2시부터 2시간동안 공동체 회의를 한다. 화요일에는 들살림과 빛칠하기, 수요일에는 소리마중(리코더)과 바깥나들이, 목요일에는 들살림과 빛칠하기·실그림, 금요일에는 소리마중과 오이리트미를 배운다. 1년에 두 번 긴여행과 지리산 등반을 한다.

학생들은 이런 교육과정에 만족하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이 뭔가 되기를 바라면서 살아가지 않는 것에 대해 만족해 했다. 정세림 양은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이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등 뭔가에 얽매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고 있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양지요 양도 “내 삶이 정해져 있지않아 다행이다.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학교 운영은 학부모들이 맡고 있다.

담임 교사는 2명으로 유급이며, 회계와 급식, 학교운영회의 주관, 책읽기 등을 돌아가면서 맡는 시스템이다. 학부모들이 할 수 없거나 전문성이 요구되는 과목은 9명의 외부강사가 맡고 있다. 실그림, 빛칠하기, 수학, 영어, 연극, 조형예술 과목 등이다.

◆점심, 학생들이 유기농으로 직접 준비

지난해 빛담예술학교 학생들의 기억에 가장 남는 수업은 평화수업이다. 사춘기인 학생들이 또래갈등과 다툼이 잦자 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단초를 마련하기위해 지난해 2학기 과정에 평화수업을 넣었다. 평화론자 서영옥선생이 강의를 맡았다. 학생들은 놀랍게 달라졌다.

나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원칙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우리들의 약속이다. 누군가 얘기할때 끝까지 들어주기와 표현할 때는 말로하기, 실수를 환영하기, 느낌 욕구로 표현하기, 자기돌봄 충분히, 비판·판단하지 않기, 기꺼이 참여하기, 강요하지 않고 부탁하기 등이 교실 칠판에 걸려있다. 

교육과정중에 눈에 띄는 대목은 점심시간인 밥살림이다. 개교부터 지금까지 학생들이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3명이 한 조가 돼 돌아가면서 점심 식사를 준비한다. 학부모 영양사가 짜준 식단에 따라 손수 음식을 만든다. 이날 점심은 샌드위치였다. 3학년 조은비양과 1학년 2명이 밥살림 담당이었다. 이들은 계란 20개를 밀가루에 풀어 능숙하게 식빵을 구웠다. 숫자에 맞게 햄과 채소를 가득 넣고 계란 묻은 빵을 포갰다. 

재료들은 생협을 통해 미리 준비한다.요리솜씨도 지금은 뭐든 척척 만들어내는 수준급이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잘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김치찌개도 끓이지 못해 담임교사에게 수십번씩 물어보고서야 겨우 만들어냈다. 밥도 마찬가지다. 물을 적당히 붓지 못하는 바람에 설익은 밥을 먹기도 여러번이었다. 학생들은 요리 레시피를 만들어 공유하고 있다.

◆불안하지 않는 학부모, 자기길을 열어가는 청소년♣

빛담예술학교에 다니면 내려 놓아야할 게 있다. 바로 부모의 욕심이다. 자녀를 어느 대학, 무슨 과에 보내려는 부모는 빛담예술학교와 어울리지 않는다. 입신양명과 출세가 아닌 학생들이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하는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게 빛담예술학교의 취지이기 때문이다.

성적으로 줄세우는 대신에 자립과 자유, 행복의 씨앗을 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들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부모들이 학생의 장래와 미래에 대한 불안해하면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매월 한차례 학부모 공부모임을 하면서 빛담예술학교의 교육철학과 방법론을 지속적으로 공유해가고 있다.

빛담예술학교는 국내의 대안학교와 교육방향이 좀 다르다. 판단능력과 결정능력의 향상은 어른들의 본보기를 충분히 경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자유주의에 기초한 교육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너무 일찍 선택하도록 했던 게 잘못이었다고 진단했다. 해당 사안에 대한 경험과 판단능력이 충분치 않는데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다 보면 그 능력이 향상되리라는 생각은 실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자신의 판단과 주장에 대한 보다 튼튼한 토대를 쌓아가도록 돕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오미정 담임교사는 “일정한 나이가 될 때가지 학생들은 부모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고 배운다”며 “이런 과정을 겪기 전에는 충분한 사고를 못한다”고 했다.

빛담예술학교를 마치고 진학을 하려면 검정고시를 치러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진학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빛담예술학교에서 배운 교육과정이 창의성과 집중력을 요구해 어떤 공부를 하더라도 잘 해 낼 수 있다는 확신을 하기 때문이다.

전지현양은 “친구들의 수학 문제를 풀어봤는데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며 “조금만 배우면 충분히 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빛담예술학교는 내년 졸업하는 중학교 3학년들의 고등학교 과정도 준비중이다. 중학교 3년 과정을 지켜보며 교육적 확신이 커졌고 교육과정의 단절이 너무도 아쉬웠던 것이다. 그래서 빛담예술학교는 현재 학교 부근에 새 부지를 마련했다. 내년부터는 중학교에 이어 고교 과정까지 개설된다.

빛담예술학교는 11월 19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담양군 대전면 문화회관서 학교 설명회를 갖는다. 학부모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2017학년도 신입생 모집 설명회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