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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랜시스 스토너 손더스 지음/유광태, 임채원 옮김/그린비/3만7000원 |
미국이 냉전을 확산하고 연장하기 위해 지식인들을 동원하고 이용했는지를 밝힌 책이다. 탐사보도 기법을 활용한 역사 다큐멘터리다. 구체적으로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미국적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반공 성향의 지식인들을 내세운 과정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영국 출신의 저널리스트가 쓴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서구 각국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사야 벌린을 비롯해 조지 오웰, 레몽 아롱, 버트런드 러셀 등 지금도 세계 지성을 이끌어가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즐겨 읽히는 애독서의 저자들이 CIA에 이용되었거나 논란의 중심인물로 드러났다. 풍부한 사료와 인터뷰를 통해 발굴해 낸 흥미있는 이야깃거리가 700여쪽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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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년 9월 학술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당대 유명 학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CIA가 주도하는 단체에 협력한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전전긍긍했다. 그린비 제공 |
영국 작가 조지 오웰(1903∼1950)도 저자의 비판 대상이다. 오웰은 CIA에게 비공산주의 좌파를 앞세우는 데 이용됐다는 지적이다. 오웰의 인기작 ‘1984’가 던진 메시지는 명확했다. 작품은 정부가 행하는 모든 위선과 기만에 대한 저항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선전 전략가들은 민첩하게도 이 책을 반공주의의 상징처럼 둔갑시켰다. 책에선 “오웰이 어떤 의도로 이 책을 썼는지는 몰라도, 작품에서 드러나는 강렬한 주제들은 결국 냉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오웰 스스로도 냉전의 조작이나 확산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예컨대 1949년에 영국 정보당국에 공산주의 동조 혐의자들 명단을 넘겨주었다. 오웰의 명단이 정부 기관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그것이 사찰로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애초의 순수성을 모두 잃게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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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파리의 한 식당에 모인 속칭 기관원들과 문인들이 어울려 식사하는 모습이다. 그린비 제공 |
버트런드 러셀(1872∼1970) 역시 CIA의 냉전 확산에 이용됐다는 데 이론이 없다. 레몽 아롱과 피에르 에마뉘엘 역시 피해자였다.
남미 출신 대표적 시인인 파벨 네루다는 냉전전략의 희생자였다. 1964년 노벨문학상은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에게 돌아갔다. 애초 노벨상위원회는 네루다에게 수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1963년 미국의 ‘세계문화자유회의’(CIA의 어용 조직)는 네루다가 노벨문학상 후보로 선정됐다는 첩보를 사전 입수, 좌파 지식인이라는 평을 듣는 네루다가 이 상을 받지 못하도록 작전을 짰다. 네루다가 자신의 시를 전체주의적인 정치 참여의 도구로 사용했다거나, 스탈린에 바치는 시로 1953년 스탈린평화상을 받았다고 음해한 것. 훗날 밝혀졌지만 이는 모두 조작으로 판명됐다. 이 때문에 네루다는 1971년에 가서야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세계문화자유회의는 선전선동의 비밀첩보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해 CIA가 만든 민간단체다. 1950년부터 1967년까지 활동한 이 단체는 전 세계 35개국 지부를 두고 ‘인카운터’를 비롯한 유력잡지 20종 이상을 발행했다. 미술전시회, 국제음악제를 열고 세간의 이목을 끄는 국제콘퍼런스도 조직했다. 이 단체의 목표는 서유럽 지식인들이 ‘미국적 방식’을 수용하도록 선전하는 것이었다. 물론 공산주의자들의 폭력성을 전파하고 공산세력을 저지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미국적 가치, 즉 CIA의 이데올로기를 만들거나 사실을 조작하는 데 더 이용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은 미 정부의 기밀문서에 근거하고 있다. 대부분 저자가 미국의 정보공개법을 활용해 확보한 것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