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전래. 고구려 소수림왕 2년, 서기 372년에 처음 들어왔다. 사서의 기록. “전진(前秦)의 왕 부견이 사신과 승려 순도를 보내며 불상과 불경을 전했다. 4년 갑술년에는 아도가 진(晉)에서 왔다.” 순도가 2년 앞선다. “왕은 초문사를 지어 순도를 머물게 하고, 이불란사를 지어 아도를 있게 했다. 이것이 고구려 불교의 시초다.” 부견은 5호16국시대 저족 출신 왕이다. 불교를 좋아했다. 인도 구자국에 군사를 보내 고승 구마라습을 강제로 모셔 왔으니. 순도를 보낸 부견은 중생을 구제하고 싶었을까, 호전적인 고구려를 제어하고 싶었을까.
불교는 서역을 넘어, 바다를 건너 인도에서 중국으로, 한반도로 흘러들었다. 제자백가 사상은 달랐다. 서역과 히말라야를 넘어간 적이 없다. 전세, 현세, 내세를 아우르는 고등종교 불교의 파괴력은 대단했다.
불국토 신라. 이름난 고승은 십중팔구 당으로 가 공부했다. 의상도 유학승이다. 원효와 함께 요동을 거쳐 당으로 가다 변방 수졸에 잡혀 죽을 뻔했다. 수십일 만에 풀려나 이번에는 사신의 배를 얻어 타고 건너갔다. 당 수도 장안의 종남산 지상사에서 공부한 의상. 화엄경을 꿰뚫는다.
외국인 유학생은 9월 말 12만2082명에 이르렀다. 유학생이 이렇게 많은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일본인 2773명. 미국인 1672명도 있다. 왜 왔을까. 과학기술이 빼어나? 우수한 대학이 많아? 아닌 것 같다. 다른 이유도 많다. 그중 하나, 문화의 매력이 그들을 불러들인 것은 아닐까.
한류. 밑바탕에는 대중문화의 힘이 깔려 있다. 세상을 바꾸는 과학기술, 학술의 힘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약하다. 중국이 드라마 방영을 제한하면 한류는 휘청거리지 않는가. 알량한 대중문화 대국의 꿈마저 흔들린다. 최순실 같은 인물이 꿈을 농락하니 그 미래는 무엇일까.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