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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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파문'으로 반기문 내려가고 야권주자 '반짝'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 파문의 여파는 대선주자들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이번 논란이 내년 대선판도까지 뒤흔들 것이란 예측이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일단 여권 전반의 악재가 야권 잠룡에는 호재가 될 것이란 분석이 주를 이루지만, 오히려 야권분열이 가속화하며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지난 27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권 유력 대선주자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지지율은 1주일 새 0.7%포인트 떨어진 21.5%를 기록했다. 벌써 3주째 하락세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0.8%포인트 상승한 19.7%로 나타났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10%포인트 안팎을 유지했던 지지율 격차가 2%포인트 안으로 바짝 따라온 것이다.

지난 25∼26일 한겨레와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도 비슷한 양상이다.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반 총장이 17.1%, 문 전 대표가 16.1%를 기록해 불과 1%포인트 격차밖에 나지 않았다. 

반 총장은 국제기구의 수장으로서 국내 정치상황에 대해 직접적으로 입장표명을 하기 힘든 상황이다. 최근 특별한 외부활동이 없었음에도 반 총장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그가 여권 대선주자라는 인식이 강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반기문 대망론’의 진원지가 여권 친박(친박근혜)계였던 만큼 반 총장의 지지세가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 새누리당과 맥을 같이한다는 방증이다. 반 총장이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친박 후보라는 낙인이 찍힌 반 총장의 입장에선, 여권 악재가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을 경우 계속해서 발목이 붙잡힐 수밖에 없다.

이번 파문이 대선정국까지 이어질 것이 거의 확실한 만큼 반 총장이 친박계와 결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다만 친박계와 거리를 두는 순간, 지금까지 구축한 이미지와 지지 기반도 함께 포기하는 모양새가 된다는 점이 딜레마다. 반 총장이 계속 여권 후보의 입지를 유지하든, 여권과 분명히 선을 긋는 판단을 내리든 일시적인 지지율 하락은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반 총장이 새누리당으로 갈 것인지, 제3지대를 택할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대선 출마 여부 자체가 중요해진 상황이다. 이는 내년 초 반 총장의 귀국 시점에 ‘최순실 파문’이 어떤 국면을 맞게 될 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 야권은 간만에 호재를 만난 형국이다. 문 전 대표뿐 아니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지지율이 상승세인데다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도 꾸준히 지지층이 결집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거국중립내각 등 다양한 가능성이 거론되며 국정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을 맞고 있다. 야권 주자가 선제적으로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해결책을 제시하며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 셈이다. 이들 중 누가 이번 파문이 수습 국면을 맞을 때 안정감을 보여주며 집권 능력을 증명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그러나 최씨 파문을 고리로 한 야권 잠룡의 지지율 동반 상승이 대선국면 전체로 봐서는 야권에 또 다른 숙제를 안겨주는 것이란 지적도 있다. 현재 야권 잠룡이 독자적인 콘텐츠와 비전을 무기로 지지율을 끌어올린 것이 아니라 여권의 대형악재로 인한 반사이익 성격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자칫 대선주자로서 스스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토양을 충분히 조성하기 전에 조기 등판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대선주자 간 동반 상승한 지지율이 오히려 야권통합의 걸림돌이 되거나 내부지형의 권력다툼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