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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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색] 같은 듯 다른 실세, 최순실과 ‘오바마의 누나’

[국기연의 월드와이드 뷰] 미 백악관 문고리 권력 쥔 재럿, 선임고문 맡아 국정 전반 관여 / ‘클린턴 딸’ 애버딘은 수행비서… ‘민간인’ 최씨는 철저히 베일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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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최순실 블랙홀로 빠져들고 있다. 최씨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채 막후에서 국정을 좌지우지한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최씨는 대학생 시절부터 40여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 곁을 지켰다. 최씨는 자신보다 4살 많은 박 대통령을 언니라고 불렀다. 박 대통령의 ‘여동생’ 노릇을 한 셈이다. 한국 현대 정치사의 비극은 두 사람의 이런 가족 같은 관계에서 태동했다.
“어려울 때 도와준 인연”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로 지목되고 있는 최순실씨(대통령 왼쪽)가 1979년 6월 10일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음제전 행사장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타파 홈페이지 캡처
미국의 대통령이나 대선 후보에게도 가족 같은 측근이 있게 마련이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는 최측근 후마 애버딘 대선 캠프 부위원장 겸 수행 비서가 있다. 애버딘은 미 연방수사국(FBI)이 투표일을 열흘 앞두고 클린턴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에 나서도록 실마리를 제공했다. FBI는 애버딘이 전 남편 앤서니 위너 전 하원의원과 함께 사용한 노트북 컴퓨터에서 클린턴과 관련된 이메일이 수천 건 발견됐다고 밝혔다.

최씨와 마찬가지로 애버딘도 20살이던 1996년에 조지워싱턴대 재학 시절 백악관 인턴을 하면서 클린턴과 인연을 맺었다. 애버딘은 그 후 클린턴의 2000년 상원의원 도전,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 버락 오바마 정부 1기 국무장관 재임, 2016년 대선 재출마에 이르기까지 지난 20년 동안 줄곧 클린턴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했다. 클린턴이 2010년 애버딘 결혼식장에서 “내가 둘째 딸이 있다면 바로 후마”라고 말했다. 애버딘은 이때부터 클린턴의 ‘수양딸’로 불린다.

클린턴은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옆에 있는 애버딘을 쳐다보면서 손마디로 똑딱 소리를 낸다. 애버딘은 클린턴의 말을 듣지 않고도 클린턴이 찾는 것을 정확하게 가져다준다고 미국 언론이 전했다. 워싱턴 정가에서 애버딘은 ‘리틀 힐러리’로 통한다. 미국의 주요 인사들이 클린턴에게 할 말이 있으면 애버딘에게 하면 된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 이 때문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부인에게 볼일이 있으면 애버딘을 찾는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오른쪽)과 밸러리 재럿.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도 가족 같은 최측근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재임 8년 동안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밸러리 재럿이다. 흑인 변호사 출신인 재럿은 오늘의 오바마를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그는 1990년대 리처드 데일리 시카고 시장 밑에서 일하면서 미셸 오바마를 채용했다. 미셸은 그에게 약혼자였던 오바마를 소개해 세 사람의 가족 같은 관계가 시작됐다. 재럿은 오바마의 ‘누나’로 불린다. 재럿은 오바마가 시카고 정계에 진출하도록 다리를 놓았고, 상원의원을 거쳐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킹메이커 역할을 했다. 재럿은 백악관 문고리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 국정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

최씨가 겉으로 보면 애버딘이나 재럿과 비슷하다. 그러나 최씨는 아무런 공식 직함이 없는 민간인 신분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어둠 속에서 국정을 농단했다. 애버딘이나 재럿은 대통령 후보나 대통령을 보좌하는 공식 직책을 당당하게 유지하면서 자신의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애버딘이나 재럿이 혹시 실수를 하더라도 그 사실이 금방 드러나 최씨처럼 나라를 통째로 말아먹는 초대형 사고를 칠 일은 없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