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세계일보가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전국체육대회 제주도 개최에 따른 진정서’ 문건을 보면, 최씨 모녀는 대회를 한 달 앞둔 2014년 9월28일 다른 선수 77명과 함께 “제주도에서 경기를 하면 장시간 말을 배로 옮겨야 하는 문제 등이 있으니 선수들이 안전하게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내륙 개최를 부탁한다”는 내용의 진정서(사진)를 대한승마협회에 제출했다.
제주 체전에 참가했던 한 승마선수의 아버지는 “말들이 낯선 경기장에 가면 긴장해서 쭈뼛쭈뼛 하기 때문에 정유라 등 아시안게임 경기장에서 경기해 본 선수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며 “제주도가 말산업 특구이기도 하고 원희룡 지사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 느닷없이 경기장이 바뀌어 의아하게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2014년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 출전한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모습. 연합뉴스 |
결국 제주도가 체육회와 승마협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1심 재판부도 제주도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전례가 있음에도 유독 제주 대회에서만 국제경기 수준을 요구한 것은 부당해 보이고, 협회가 최종점검 통보도 없이 한 현장실사에 따라 개최 불가를 결정한 것은 위법하다”며 1억8444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제주도 측의 관계자는 “승마협회에서 말 운송 문제를 지적한 내용도 보험을 비롯해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며 “몇년 전부터 제주대회 일정이 확정됐는데 대회가 임박해서 선수들이 말 운송 문제로 진정서를 낸 것도 이해가 안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주 승마 대표인 A선수까지 진정서를 내 논란이 많았다. 제주승마협회 한 관계자는 “많은 비난을 받았던 A선수의 해명을 들어보니, ‘주위에서 사인을 하라고 해서 했다’고 하더라”면서 “승마계는 위계가 엄격한데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A선수는 취재팀에게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입을 닫았다.
전 지방승마협회장 B씨는 “당시 진정서는 최씨의 최측근인 박모 전 승마협회 전무가 주도했고 선수들은 형식적으로 진정서에 서명만 했다”고 주장했다.
갑자기 바뀐 경기장이 인천 드림파크승마장인 점도 승마인들 사이에서는 의문이었다. 내륙 경기는 국제 규격에 가장 적합한 경북 상주국제승마장에서 열리곤 했기 때문이다. 최근 5년 간 전국체전 승마 경기가 상주가 아닌 인천에서 열린 해는 2014년이 유일하다. 당시 대한체육회는 대체 경기장 1안으로 드림파크승마장을, 2안으로 상주승마장을 제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오영훈 의원은 “최씨의 딸 편의를 위해 대회 개최지 변경 등의 전횡이 있었다면 권력이 전국민을 우롱하고 온 힘을 들여 전국체전을 준비하던 제주도민들을 짓밟은 셈”이라며 “국회 차원에서도 명확한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책 마련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태영·최형창·이창수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