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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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담화 시민 반응…"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60·개명 후 서원)씨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4일 대국민담화를 했지만 성난 민심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과의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반응이 일부 있었지만, 박 대통령이 최씨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모습에서 분노를 넘어 허탈감이 느껴졌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사태수습책을 놓고 청와대·여권과 야권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서 5%까지 떨어진 국정운영 지지율과 거리에서 표출되는 민심이 향후 국정 운영의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대국민담화가 시작된 이날 오전 10시30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시민들이 가던 발걸음을 늦추고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담화 내용에 집중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담화를 본 시민들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는 반응이었다. 박모(32)씨는 “혹시라도 대통령이 본인의 잘못을 시인하고 하야 선언을 하거나 국정에서 손을 놓고 물러나겠다고 할 줄 알았다”면서 “하지만 결국 최순실 개인의 잘못이고, 본인이 힘들었을 때 도움을 받았을 뿐이라는 발뺌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같은 시각 서울역 대합실에서도 시민들이 TV에서 흘러 나오는 박 대통령의 목소리와 화면 자막에 집중하고 있었다. 웅성거림 때문에 소리가 잘 안 들리자 스마트폰과 이어폰을 꺼내 드는 시민들도 많았다. 이모(43·여)씨는 “이미 전방위적으로 제기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잘못이 밝혀지면 책임진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처음 사과 때도 그렇고 오늘 대국민담화를 대체 왜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대구·경북(TK) 지역 민심도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미에 사는 주부 정모(32·여)씨는 “끝까지 박 대통령을 믿고 싶었는데 계속되는 보도와 담화문까지 보니 정말 대통령이 잘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했다. 대구 출신 직장인 송모(31)씨는 “담화문 대부분이 감성에 호소하는 내용이었다”며 “끝까지 자신이 잘못했다고 시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누리꾼들도 “여전한 유체이탈화법”, “감성팔이로 시작해 안보팔이로 끝난 담화”, “부산에 사는데, 내일은 꼭 서울로 올라가 집회에 참여해야겠다” 등의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참여연대 안진걸 공동사무처장은 “수사를 핑계로 구체적 경위 설명을 거부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문제가 많은 사과였다. 국가를 위해 선의로 한 일이라는 등 형식적 사과와 거짓 변명으로 일관했다”며 “5일 대규모 촛불집회에서 국민의 무섭고 위대한 힘을 보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2008년 광우병국민대책위 인권법률팀장을 지냈던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정권에 채찍을 휘두르느냐, 한번 더 기회를 주느냐는 이제 국민 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주 촛불집회에서 민심이 어떻게 분출되느냐가 정국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사과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반응을 내놨다. 시민 양모(43)씨는 “대통령이 두 번이나 담화를 할 정도면 이미 어느 정도 사과한 것”이라면서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대통령으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했다. 공무원 장모(46)씨는 “지난달 첫 번째 사과 때보다 일정 부분 진전된 내용이 담겼으며, 사과의 진정성도 있어 보였다”며 “다만 검찰 수사를 받겠다는 당연한 것만 이야기했지, 앞으로 야권과 어떻게 할지에 대한 비전 제시가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김준영·이복진·김범수 기자 b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