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 국장이 이번 사건의 재수사 방침이 미칠 파장을 몰랐을 리 없지만 그 파장이 대선판을 집어삼키는 쓰나미가 될 줄 몰랐을 것이라고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가 지적했다. 코미는 이제 공무원의 선거 개입을 금지한 해치법 위반 혐의로 연방특별조사국(OSC)의 조사를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미 법무부도 코미 국장이 선거 60일 전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수사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법무부와 FBI의 관행을 깼다고 그를 비판했다.
지난 7월 미 의회 청문회에서 발언하는 제임스 코미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 워싱턴=AP연합뉴스 |
FBI 국장은 임기 10년을 보장받고 있다. 코미 국장은 지난해 6월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부에서 법무부 부장관을 지낸 ‘공화당원’이지만 ‘정치에 물들지 않은 인물’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FBI 수장 자리를 맡겼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가장 신중해야 할 대선전의 막바지에 그가 가장 정치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평가이다.
FBI가 재수사에 나서는 실마리가 된 것은 클린턴의 ‘수양딸’로 통하는 최측근인 후마 애버딘의 전 남편 앤서니 위너 전 하원의원의 섹스팅 사건이다. 위너는 과거에 미성년자와 음란한 문자를 주고받는 ‘섹스팅’을 한 사실이 발각돼 의원직을 내놓았고, 애버딘과도 이혼했다. FBI는 위너의 노트북 컴퓨터를 압수해 저장물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클린턴과 관련된 애버딘의 업무 이메일을 무더기로 발견했다.
코미 국장은 클린턴 이메일 재수사로 결승선을 향해 질주하던 클린턴 후보의 발을 걸었다. 클린턴이 완전히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크게 휘청거렸고, 그 사이에 뒤처졌던 트럼프가 클린턴을 제칠 기세로 달려들고 있다.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WP)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가 1%가량 클린턴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는 코미 국장의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 방침을 담은 텔레비전 광고를 긴급히 제작해 주요 경합 지역에 집중 투하하고 있다.
만약 클린턴이 대선에서 승리하고,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의 다수당을 차지하는 여소야대 정국 구도가 전개되면 공화당은 즉각 클린턴 이메일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청문회 개최 등 정치 공세를 펼 것이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지적했다.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클린턴을 감옥에 보내겠다고 공언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