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투쟁본부는 이날 오전 8시 백씨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생명과 평화 일꾼 고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 발인식을 가졌다.
영정사진은 백씨 아들 두산씨가 들었으며, 투쟁본부가 관을 운구했다. 백씨 딸 도라지·민주화씨가 뒤따랐다.
이어 명동성당으로 이동해 9시부터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집전으로 장례 미사가 진행됐다. 성당 안은 시민과 신도 등 1200여명이 장례 미사를 함께했다.
백도라지씨는 “살아생전 아버지가 명동성당에서 임마누엘 세례명을 받았다”며 “장례 미사도 여기서 치르게 돼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매우 기뻐할 것”이라며 감사했다.
이후 유족을 선두로 한 운구행렬은 백씨가 쓰러졌던 종로1가 르메이에르 빌딩 앞으로 이동해 노제를 치렀다.
오후 2시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영결식이 진행됐다. 영결식에는 장례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해 국민의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정의당 심상정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 야권 주요인사들과 종교계, 문화예술계, 시민단체 및 시민 2만여명(경찰 추산 1만1300명)이 참석했다.
김영호 백남기 투쟁본부 상임장례위원장이 먼저 시작한 추도사에는 추미애 대표, 박지원 비대위원장, 심상정 대표 등 야3당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참여했다.
김 위원장은 “살인 정권이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 백남기 농민을 죽으나 그들은 살인의 진실을 감추고자 악마이기를 했다”며 “책임과 처분은 박근혜 정권 퇴진이다. 세상 이미 박근혜 퇴진운동의 거대한 흐름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추미애 대표는 “무너지는 농민의 삶을 지키기 위한 고인의 절규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라며 “대통령은 오로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과 국정을 볼모로 삼고 있다. 국민의 뜻을 거역한다면 국민과 함께 정권 퇴진운동에 들어갈 것을 재차 경고한다”고 밝혔다.
박지원 비대위원장도 “정치적 민주화를 쟁취한 지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공권력에 의한 죽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며 “다시는 공권력에 의한 희생이 없도록 다짐한다”고 강조했다.
심상정 대표는 “박근혜 정부는 참담한 끝을 보이고 있다. 사필귀정”이라며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국민의 생명을 무참히 빼앗은 정권을 단호히 끌어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명명된 소설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있다”며 “부패한 권력의 정점, 박근혜 대통령을 하야시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씨의 딸 백도라지씨는 “아버지를 지켜주신 분들께 고맙다는 말로는 저희들의 마음을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며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비롯한 국가 폭력의 책임자들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습니다”고 감사의 편지로 화답했다. 이어 “이들을 처벌하고 정부의 책임 있는 사죄를 받아내는 것이 우리 가족들의 첫 번째 싸움”이라며 “두 번째 싸움은 농민들이 제대로 대접받는 세상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도라지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빠 사랑해요”로 말하며 마쳤다.
이날 장례는 오후 4시쯤 유족과 투쟁본부 관계자 등의 헌화로 끝을 맺었다.
투쟁본부는 6일 오전 백씨의 고향인 전남 보성역과 광주 금남로에서 노제를 지낸 뒤 망월동 5·18 구묘역에 백씨의 유해를 안장할 예정이다.
1947년 보성에서 태어난 백씨는 중앙대 행정학과에 입학, 재학 시절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1980년 체포됐다가 이듬해 3·1절 특별사면되고서 보성으로 내려가 농업에 종사했다.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가톨릭농민회에서도 활동했다.
지난해 11월14일 서울에서 열린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한 고인은 경찰 차벽 앞에서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졌다. 머리를 심하게 다친 그는 한 번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다 지난 9월25일 숨을 거뒀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사진=백남기 투쟁본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