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남 검찰총장이 굳은 표정으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 출근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부패범죄 특별수사단, ‘진경준 비리’ 특임검사팀, ‘우병우 이석수 사건’ 특별수사팀, ‘스폰서 검사’ 특별감찰팀 및 특별감찰단,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수사본부…. 모두 현재 가동 중이거나 최근 가동됐던 검찰 내부 ‘특별한’ 수사팀들이다. 일각에선 국회가 여야 합의로 특별검사(특검)를 도입하는 것을 견제하고자 검찰이 특별할 ‘특(特)’자가 들어간 기구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들의 심각한 불신 등 현재 검찰이 처한 여건이 ‘일반적’ 대책으로는 안 되고 뭔가 ‘특별한’ 처방이 꼭 필요해 이렇게 특별 수사기구를 계속 양산하는 것이라면 그 취지에 공감이 간다. 하지만 특별수사팀, 특별수사본부까지 동원해도 국민이 납득할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김 총장을 비롯한 검찰 지휘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부패범죄특별수사단
검찰은 올해 초 총장 직속의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을 기세 좋게 출범시켰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의 포스코 비리 의혹 수사가 지나치게 오래 걸리고 성과도 미미하자 ‘옛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후 검찰의 특별수사 역량이 크게 약화됐다’는 안팎의 여론을 김 총장이 받아들인 결과였다.
‘중수부 부활’ 또는 ‘미니 중수부’라는 평가를 들으며 발족한 특수단은 과거 대검 중수부가 담당했던 대형 부정부패 사건을 ‘타깃’으로 삼았다. 검찰의 내로라하는 ‘특수통’인 김기동 검사장이 단장을, 역시 특별수사 경험이 풍부한 주영환·한동훈 부장검사가 나란히 1·2팀장을 각각 맡았다.
특수단은 5개월가량의 준비 끝에 지난 6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대대적 압수수색으로 수사의 ‘닻’을 올렸다. 남상태·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구속기소하고 회사 부실화의 구조적 요인을 밝혀내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나 강만수 전 산업은행 회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며 수사가 답보 상태다.
◆‘진경준 비리’ 특임검사팀
진경준 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이 대학동창인 넥슨 창업자 김정주 NXC 회장으로부터 거액의 주식을 공짜로 받아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진 전 검사장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으나 시민단체 고발로 수사가 시작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의 주도로 기초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뒤 김 총장은 이금로 인천지검장을 특임검사로 전격 임명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도록 했다. 특임검사는 현직 검사의 비리 의혹만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제도로, 총장에게 수사 결과만 보고하면 되는 만큼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가 가능하다.
예상대로 특임검사팀은 진 전 검사장의 뇌물수수 의혹을 파헤쳐 그를 구속기소하는 성과를 올렸다. 검찰 68년 역사상 첫 현직 검사장의 구속이었다. 특임검사팀 자체의 활약에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진 전 검사장 같은 인물이 승승장구하며 검사장에까지 오를 정도로 법무부·검찰 조직이 허술한 것으로 드러나며 국민적 불신이 가중되는 계기가 됐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굳은 표정으로 검찰 특별수사팀에 출석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진 전 검사장이 구속되자마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불똥’이 옮겨 붙었다. 우 전 수석은 2015년 초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을 담당하며 진 전 검사장을 승진시킨 장본인이다. 우 전 수석이 진 전 검사장과의 개인적 인연 때문에 그의 흠결을 잘 알면서도 검사장 승진에 동의해줬다는 새로운 의혹이 불거졌다.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실이 우 전 수석 감찰에 나서며 문제가 꼬였다.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은 우 전 수석의 의경 아들이 보직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 우 전 수석의 가족회사인 ‘정강’의 탈세·횡령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감찰했다. 이 전 감찰관이 검찰에 우 전 수석 수사를 의뢰하자마자 우 전 수석 측의 반격이 시작됐다. 이 전 감찰관이 기자의 취재에 응대하는 과정에서 우 전 수석 감찰 내용 일부를 설명한 것을 갖고 ‘국기문란’ 등 터무니없이 과장된 수식어를 써가며 이 전 감찰관을 비난한 것이다.
김 총장은 청와대의 현직 민정수석과 특별감찰관이 나란히 엮인 이 희대의 사건 수사를 위해 특별수사팀 구성을 지시했다. 윤갑근 대구고검장이 팀장에 임명돼 사법연수원 동기생인 우 전 수석 관련 의혹을 샅샅이 파헤쳤다. 특별수사팀은 6일 우 전 수석 소환조사를 끝으로 수사 마무리와 결과 발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스폰서 검사’ 특별감찰팀 및 특별감찰단
부산고검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사위인 김형준 부장검사가 고교동창 사업가로부터 현금, 향응, 접대 등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정황이 언론 보도로 만천하에 공개됐다. 문제의 고교동창 사업가는 자신이 김 부장검사의 ‘스폰서’였다고 시인했다. 검찰로선 2010년 MBC PD수첩의 폭로로 촉발된 ‘스폰서 검사’ 사건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김 총장은 이 사건 수사를 위해 안병익 서울고검 감찰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특별감찰팀을 꾸리도록 했다. 현직 검사의 비리 의혹인 만큼 특임검사를 가동하는 것이 맞으나 사안의 성격상 수사보다 감찰이 더 어울린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친정’인 검찰의 공세에 완강히 버티던 김 부장검사는 결국 추가 비리 혐의로 드러나 구속기소됐다. 김 총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대검 감찰본부 산하에 ‘특별감찰단’을 신설하는 결정을 내린다. 오정돈 차장검사를 단장으로 하는 특별감찰단은 부장검사급 이상 간부들의 비위 의혹 감시를 주된 임무로 삼았다. 이제 범죄 수사뿐만 아니라 검찰 내부에서 벌어진 비위 의혹 감찰조차 ‘특별한’ 기구에 의해 이뤄지는 현실에 많은 검사가 씁쓸함을 넘어 자괴감을 느꼈다.
최순실씨가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출석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먹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올해 들어 역사상 가장 특별해진 검찰의 정점을 찍은 기구가 바로 최순실씨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특별수사본부다. 고검장급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직접 본부장을 맡고, 단일사건 수사팀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검사 32명이 투입된 점만 봐도 아주 특별하다.
김 총장은 지난 4일 특수본 확대를 지시하며 “최씨 신병이 확보된 만큼 이와 관련된 의혹을 철저히 수사해 실체적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면서 “필요하면 가동 가능한 검사를 모두 동원하라”고 명령했다. 사실상 전국 검찰청에 ‘총동원령’을 내린 것이다.
특수본은 현재까지 최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 3명을 구속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이는 최씨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국민들 눈높이에는 한참 부족한 성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특별검사 수사도 받겠다”고 공언한 만큼 특수본은 이제 국회에서 도입을 논의 중인 특검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이 정말 특별한지, 아니면 그냥 평범한지는 이제 전적으로 박 대통령 수사 결과에 달리게 됐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