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근 ‘최순실 사건’이 터지면서 재미동포들은 창피해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게 됐다. 미국에 이민와 27년째 살고 있는 김태원 북버지니아 한인회장은 “최근엔 연락하는 한국 친구와 친척들이 ‘괴롭다’거나 ‘미치겠다’고 한다”며 “미국 대선 이야기가 한가하고 사소한 소재가 될 정도로 한국 상황이 암울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선실세로 불린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의 충격파는 이렇게 곳곳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종현 워싱턴 특파원 |
외부에 드러난 청와대와 백악관을 지켜본 입장에서 이런 참상은 사실 예견된 참화였다. 사안이 터질 때면 백악관은 나타나지만, 청와대는 사라진다. 청와대의 방관하는 모습과 백악관의 노력하는 모습이 교차하는 것은 흔하다.
임기를 2개월 남짓 남기고도 50%가 넘는 국정수행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오바마는 실천 가능한 공약을 제시했으며, 치열하게 대화했다. 그는 쿠바·이란 등과의 관계 개선, 이민개혁, 건강보험개혁,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 경제 활성화 등 대선 당시의 공약을 하나씩 이행했다. 총기규제 등 일부 공약은 이행하지 못했지만 그건 오바마의 책임이 아니란 사실을 미국인들은 잘 알고 있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는 분명하다. 아무리 시급한 현안이라도 의회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원천 불능이다. 최근 들어 수많은 총기 사건이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했지만 총기규제법은 의회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의회가 반대한다고 해서 손놓고 있다면 제대로 된 대통령이 아니다. 오바마는 취임 초부터 지금까지 8년 동안 의회를 설득하고 있다. 때론 미국인에게 직접 호소하기도 한다. 오바마는 사안이 발생하면 휴일에도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때로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때로는 감정이입의 화법으로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비선 실세에 의지한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에는 이런 모습이 없었다. ‘박근혜의 실패’를 경험한 우리는 ‘오바마의 성공’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실천 불가능한 공약을 제시하거나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배척해야 한다. 오랫동안 대통령의 ‘예스맨’으로 거수기 역할에 그쳤던 여당도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비리 척결에 수수방관한 검찰 등 권력기관도 마찬가지다. 이번 파문이 드러날 때까지 제대로 역할을 못한 야당의 처지도 곤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모두 두 눈 똑바로 뜨고 이번 일을 기억해야 한다.
박종현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