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박병진의 밀리터리S] '최순실 쓰나미'에 사드도 불발?

박 대통령 퇴진 땐 장담 못해 / 브룩스 “조기 배치” 거듭 강조 / 리퍼트 대사 ‘민심 탐방’ 주목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까지 거론되면서 지난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한·미 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합의가 물건너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미 군 당국은 지난 7월8일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를 결정했다. 북한 핵과 미사일,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과 함께 한·미동맹의 군사력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조치’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사드는 군사적인 테두리를 벗어나 정치 이슈화했다. 2014년 6월 커티스 스캐퍼로티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을 통해 사드가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민 뒤 중국은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정부는 안절부절못했다. 국민에게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모습으로 비쳤다.

국내에선 사드 후보지로 거론된 지방자치단체들이 반발했다. 과거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제주 강정마을의 갈등이 재연됐다. 군의 미숙한 대응 탓이다. 군 당국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어렵사리 결정했던 사드 배치 지역을 성산포대에서 롯데스카이힐 성주골프장으로 번복하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겪고 진정 기미에 접어든 것으로 여길 즈음 최순실씨 국정농단 파문으로 사드는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조짐이다. 최씨의 사드 의사결정 과정 개입→대통령 탄핵 또는 하야→사드 배치 지연 내지 무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국방부가 사드 교환부지로 제안한 남양주 일대 토지를 놓고 성주골프장의 주인인 롯데 측이 골프장 값어치를 높여 줄 것을 요구하며 협상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대통령 퇴진운동이 벌어지는 마당에 업체로선 아쉬울 게 없어 보인다. 시간을 끌며 버티는 것은 당연지사다.

가장 곤혹스러운 건 바로 미국이다. ‘One Size Fits All’(하나의 사이즈로 여러 명이 입을 수 있는 옷)로 대변되는 미국의 사드 한반도 배치전략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당초 미국은 미국 내 여론과 북한, 한국, 중국 등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사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만약 박 대통령 퇴진이 가시화한다면 사드 배치는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이럴 경우 미국은 한·미관계에 있어 가장 민감하고 영향력이 큰 부분인 군사분야에서 실패를 맛볼 수 있다. 또 향후 미국과 중국이 ‘균형적인 갈등관계’를 유지하고 양국이 전략적 가이드라인을 수립하는 데 큰 변수가 될 수 있는 카드도 잃게 된다.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반하는 한·중관계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견제 역시 어려워질 수 있다.

빈센트 브룩스 연합사령관이 지난 4일 “향후 8~10개월 안에 사드 포대를 한국에 전개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은 사드 배치 불발을 우려하는 조바심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지난 5일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를 직접 둘러본 배경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긴박하게 움직이는 미국과 달리 우리 국방부는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눈치다. 국방부 정책실을 비롯해 한민구 국방장관까지 온통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만 매달리고 있어서다. 정국 변화에 따라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한·미 간 사드 배치 합의와 배치 지역 결정은 유지돼야 한다. 국가안보에는 흔들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