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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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하는 게 순리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리자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가 그제 국정교과서 집필진 및 편찬심의위원으로 추정되는 인사 9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미 공개된 집필진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심의위원 이기동 한국학중앙연구원장과 새로 드러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보수 성향 일색이다. 일부는 뉴라이트 성향 단체에서 활동했다. 편향된 시각의 집필이 우려된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균형 잡힌’ 집필진을 구성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한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최씨 최측근 차은택씨의 외삼촌으로 밝혀지면서 최씨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 박 대통령 발언도 문제가 되고 있다. ‘최순실 교과서’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역사학계와 시민단체에 이어 교육감들도 잇달아 국정화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마저 “교과서 국정화라는 게 합당하고 지속될 수 있는지에 의문을 갖고 있다”고 했다.

교육부는 오는 28일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과 집필진 46명, 심의위원 16명의 명단을 공개한다. 12월까지 의견 수렴과 현장검토본 수정·보완작업을 거쳐 내년 1월 심의를 마무리하고 3월 새 학기부터 중·고교에 배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일정대로 일이 진행되긴 어려울 것이다. 현장검토본과 집필진 명단이 공개되면 사회적 논란이 거세게 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미래 세대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일은 조금이라도 의혹이 있어선 안 된다. 교과서를 남몰래 밀실에서 집필하는 것부터 잘못됐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가 배포되면 교육현장에서 외면받을 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반발로 국정 혼란이 가중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국정화를 추진하게 된 것은 현행 검정 교과서의 왜곡과 편향이 심각해서다. 이런 문제를 바로잡겠다면서 또 다른 획일적 역사교육을 하는 것은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다. 교과서 국정화는 시대착오적이다. 교육부는 더 늦기 전에 국정화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내년에는 현행 검정교과서를 사용하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역사교과서 개선안을 마련하는 게 합리적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