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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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메모] 기세등등 우병우… 국민을 뭘로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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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부장검사가 팀장에게 보고하러 간 사이 나온 장면이다.”

7일 아침 한 신문에 ‘팔짱낀 채 웃으며 조사받는 우병우’라는 제목으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전날 밤 서울중앙지검 11층에서 조사를 받는 사진이 실려 국민 분노가 폭발하자 검찰이 내놓은 해명이다. 군색하기 짝이 없다. 사진 속에서 우 전 수석은 팔짱을 낀 채 여유 있는 표정으로 공손한 자세를 취한 수사팀 직원의 얘기를 듣고 있다. 한마디로 ‘우 전 수석을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하다 잠시 쉬는 시간에 나온 모습’이라는 검찰의 설명과 동떨어진다. 사진은 ‘피의자 우병우’가 조사를 받는 게 아니라 검사에게서 수사상황 보고를 받는 것처럼 비쳐진다.

검찰의 굴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이 유독 ‘우병우’ 앞에만 서면 작아졌던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 고검장)은 우 전 수석의 집과 집무실 압수수색을 생략하고 조사도 어설프게 하면서 서둘러 면죄부를 주려는 인상을 풍겼다. 소환조사도 수사 착수 후 두 달을 훨씬 넘겨 그가 경질된 후에야 이뤄졌다.


김건호 사회부 기자
전날 소환 때도 가관이었다. 지난 7월 “검찰에서 부르면 ‘모른다’ ‘아니다’는 말밖에 할 게 없다”고 못박았던 우 전 수석은 검찰에 나와서도 기고만장했다. 국정을 마비시킨 ‘최순실 게이트’에 대통령까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지만 그는 당당했다. 빈말로라도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말 대신 ‘최순실 사태에 책임을 느끼냐’고 묻는 취재진을 노려봤다. 대통령의 측근 비리를 방지할 책임이 있는 민정수석의 자세가 아니었다. 시중에 나돌았던 대한민국 권력서열(1위 최순실, 2위 정윤회, 3위 박근혜)이 ‘3위 우병우, 4위 박근혜’로 바뀐 듯 보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수사팀장은 우 전 수석이 검찰청사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방으로 불러 차를 대접하며 예우했다.

민정수석이 최순실씨와 최씨 측근들의 국정 농단을 묵인하거나 방조하지 않았으면 나라가 이 지경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여기는 국민들로선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다. 이러려고 국민이 검찰에 정의의 수호자 역할을 맡겼는지 자괴감이 든다.

김건호 사회부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