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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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거야가 난국 수습의 역랑과 책임 보여줄 때다

박 대통령 김병준 카드 접어 / 2선 후퇴 없어 야당 의구심 / 대통령 만나 본 뒤 결정을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국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를 추천해 주면 임명해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병준 총리 지명 철회 뜻을 사실상 공식화한 것이다. 지난 2일 꺼내든 김병준 총리 카드는 사전통보조차 받지 못한 야당의 반발로 되레 최순실 파문 수습의 걸림돌이 됐다. 야당은 김병준 카드 철회 등을 요구하며 박 대통령의 영수회담 제의를 거부했다. 그동안 고집을 꺾지 않고 6일이나 허비한 박 대통령이 이제라도 야당 요구를 수용한 건 다행이다. 청와대는 임종룡 경제부총리·박승주 국민안전처장관 내정자의 거취도 “국회와 상의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김 내정자와 협의해 발표한 두 각료 인선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2선 후퇴’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국정 정상화를 위해 모든 걸 내려놔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여전히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야당은 차기 총리의 내각 통할 의미, 대통령 탈당 등이 불분명하다며 국면전환용, 시간벌기용 아니냐고 반신반의하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저와 야당이 제안했던 거국중립내각의 취지와 다르고 민심과도 많이 동떨어져 있다”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국회에 공을 던지고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이 ‘국회 추천 총리의 내각 통할’ 입장을 밝힌 마당에 2선 후퇴, 총리에 대한 조각권·국정 일임을 거부할 까닭이 없다. 이 시점에서 별 의미가 없는 새누리당 당적을 고집할 이유도 없다. 야당이 협조할 수 있도록 권한 포기의 진정성을 충분히 보여줘야 하는 건 대통령의 몫이다. 청와대는 여야 영수회담을 별도로 추진할 예정이다. 회담은 빠를수록 좋다.

야당도 박 대통령을 밀어붙이는 것만이 능사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민심은 박 대통령의 ‘항복’을 요구하고 있지만 헌법 정신과 헌정 질서를 고려할 때 현재 거론되고 있는 국정정상화 방안들이 칼로 두부 자르듯 간단히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지명 철회로 물꼬를 텄으면 야당도 물길을 내는데 힘을 보태야 한다. 시간만 끌며 국정 표류를 방치해선 안 된다. 국회추천 총리의 권한 범위는 어떻게 되고, 2선 후퇴와 탈당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등을 박 대통령에게 직접 확인하고 향후 대응 방향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거야가 난국 수습의 역량과 책임을 보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