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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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분리' 완화 좌초 조짐에 속타는 인터넷전문은행

여소야대에 '최순실 게이트'까지…은행법 개정안 통과 난망
"현재 지배구조로는 증자와 과감한 사업 전개 힘들다" 한숨
여소야대 국회와 ‘최순실 게이트’ 파문으로 은행과 산업자본의 분리(은산분리) 완화가 사실상 좌초될 위험에 처하면서 인터넷전문은행 관련업체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인터넷은행을 준비하는 측은 “지금처럼 산업자본의 의결권 지분 보유 한도가 4%로 제한된 상태에서는 기존 은행들을 당해낼 수 없다”고 염려했다. 이들은 “최소한 인터넷은행에 한해서는 은산분리가 완화돼야 증자와 과감한 사업 전개로 은행과의 경쟁이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여야는 오는 17일부터 24일까지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국회에  상정된 법안들의 검토에 나설 예정이다. 은산분리 완화와 관련된 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다.

현재 은행법에서는 산업자본이 은행의 지분을 최대 8%, 의결권 있는 지분은 최대 4%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강석진 의원과 김용태 의원은 이를 완화해 인터넷은행에 한해서는 산업자본의 의결권 지분 소유 한도를 50%까지 확대하는 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도 비슷한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산업자본의 지분 보유 한도를 34%로 축소했다.

정부 역시 같은 입장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인터넷은행은 IT기업이 주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은산분리 완화가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의 의결권 지분을 4% 넘게 가질 수 있는 산업자본에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제외됐기 때문에 ‘재벌의 사금고화’ 우려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이 정무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최순실 게이트’ 파문으로 정부와 여당에 대한 야당의 불신이 극에 달한 데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의 동의가 없으면 상임위도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이 결국 재벌의 은행 지배를 허용하게 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며 “민주당은 당론으로 은산분리 완화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정재호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 대해서도 “당의 입장과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국민의당과 정의당 역시 비슷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부나 여당이 추진하는 어떠한 정책도 믿기 힘들다는 것이 현재의 야당 분위기”라면서 “은산분리 완화는 국회 정무위의 법안심사소위도 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최순실 게이트’ 파문이 가라앉고, 거국중립내각이 출범하기 전에는 은산분리 완화가 진지하게 논의되기 힘든 분위기”라면서 “아마 연내 은행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도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때문에 인터넷은행업계에서는 “정부의 은산분리 완화 약속을 믿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답답하다”고 하소연한다.

인터넷은행 출범을 준비 중인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본인가를 받는 즉시, 올해말이나 늦어도 내년초에는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러나 KT와 카카오가 사업을 주도함에도 정작 두 인터넷은행에서 양 사의 지분율은 8~10%에 불과하다. 

케이뱅크의 주주는 KT 외에 우리은행, NH투자증권, GS리테일, 한화생명보험, KG이니시스 등 21개사로 구성돼 있다. 카카오뱅크는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지분율이 54%에 달해 10%인 카카오를 압도한다.

금융사의 지분이 더 많다 보니 “IT기업이 주도해 새로운 형태의 은행을 만든다”는 인터넷은행의 취지가 사실상 무색해지는 모습이다.

인터넷은행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증자가 필수적인데, 은산분리 규제 때문에 IT기업들의 증자가 힘든 상황”이라며 “이대로는 금융사의 자회사나 다름없이 돼 특색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차후의 사업 전개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인터넷은행업계 관계자는 “이미 은행들이 모바일 금융플랫폼을 출시하고, 중금리대출 상품을 판매하는 등 인터넷은행의 영역을 선점하고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핀테크를 중심으로 과감한 사업 전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지만 지배주주 없이 지분 구조가 복잡한 상태에서는 신규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은산분리 완화 없이는 인터넷은행의 미래가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세계파이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