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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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색] 시국선언 주도, 그들은 ‘광우병 촛불세대’

청년층 사회변화 핵심 부각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분노의 민심을 대변하는 촛불집회에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20대 청년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각계각층의 시국선언도 대학생들이 물꼬를 텄다. 치열한 입시경쟁과 취업난에 치여 움츠려 있던 이들이 광장에 나와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은 8년 전 ‘학습효과’에서 비롯됐다.

중·고등학생 교복 차림으로 광우병 촛불집회에 참여하며 사회문제에 눈을 뜬 ‘청소년 촛불세대’가 바로 지금 20대 청년들이다. 청소년기에 광장 민주주의를 경험하면서 불의에 분노할 줄 알고 부조리한 제도와 관습 타파를 위해 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시민의식을 갖춘 것으로 분석된다.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아주대 학생인 강모(26)씨는 고교 2학년 때인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에 처음 참여한 뒤 지난해 민중총궐기, 지난 5일 광화문 촛불집회 등 주요 집회 현장을 찾고 있다. 강씨는 “사회 부조리에 대해 분노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2008년 촛불집회를 통해 느꼈다”며 “이념 성향과 상관없이 정부 정책이나 사회문제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씨 말처럼 20대 상당수는 광우병 촛불집회를 자신들의 정치사회화 계기로 꼽는다.

2008년 5월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1만여명이 처음 촛불을 들었을 때 많은 중·고교생이 참석했다. 당시 10대 청소년들은 쇠고기 수입문제뿐만 아니라 이명박정부가 추진했던 0교시 수업과 학교자율화 정책에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 즈음 고려대가 광우병 촛불집회에 참여한 중·고교생 333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6.1%가 ‘정부정책에 대한 분노’를 집회 참여 이유로 꼽았다. ‘광우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응답자는 14%에 그쳤다. 자신들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부정책과 사회현안에 옐로카드를 들었다는 얘기다. 

최근 대학가 시국선언을 이끈 주역 중 한 명인 안드레(27) 동국대 총학생회장도 8년 전 광우병 사태가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고 한다. 그는 “당시 지방에 살고 있어서 직접 촛불집회에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온라인을 통해 의견을 제시하는 등 사회 참여의 계기가 됐다”며 “방관자로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2011년 쌍용차 구조조정 사태, 2013년 대학가의 ‘안녕들하십니까’ 운동,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촉구 활동 등에 적극 참여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과거 일부 과격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불법·폭력시위로 변질되곤 했던 대규모 집회의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고 평화적인 집회 시위 환경을 조성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단국대 재학생 박모(22·여)씨는 “친구들에게 집회 참여를 독려하거나 강요하면 이념적이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라며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광장에 나가 평화적이고 밝은 분위기 속에서 참여하는 것 자체가 좋다”고 말했다.

경북대 노진철 교수(사회학)는 “20대 촛불세대는 청소년기에 광장에서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 사회적 참여를 경험한 것이 특징”이라며 “이들은 불의에 참지 않고 타인과 공감을 통해 사회에 참여하는 의식이 내재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외환위기(IMF)로 취업난을 겪으면서 참는 게 익숙해진 이전 세대와 달리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활동을 통해 건강한 시민사회의 주축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