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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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NO’만 외치는 문재인

국정수습 열쇠 쥔 유력주자
통치능력 인정받을 기회에
말 바꾸고 조건 붙여 반대만
역풍 맞기 전 정치력 보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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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취재하던 2008년 6월. 이명박(MB)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협상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광우병 촛불집회 참가자는 ‘명박산성’을 넘어 청와대로 몰려왔다. “MB 아웃” 함성을 듣는 건 출입기자에게도 고역이었다. 경찰 병력이 곳곳에 배치된 삼청동 일대는 살풍경이었다. 광화문 진입로는 막히기 일쑤였다. 삼청공원쪽으로 돌아가는 귀갓길은 멀었다. MB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 취임 직후 퇴진 압력에 몰린 새 대통령. 비정상은 한 번이면 족했다.

최순실 파문이 덮친 박근혜 대통령. 권위를 잃고 ‘식물대통령’으로 전락했다. 8년 전보다 참혹하다. 국민 분노를 재울 능력도, 선택권도 없다. 지난 5일 ‘박근혜 아웃’을 외쳤던 촛불민심은 12일 집회를 벼르고 있다. 난국 수습을 기대할 곳은 국회, 거야뿐이다. 열쇠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쥐고 있다. 제1야당이 ‘문재인당’이라는 건 다 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오른쪽)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9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전 대표와 앙숙인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입만 열면 “대통령 물러나라”는 소리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짝짜꿍이 잘 맞는다. 두 사람은 어제 만나 비상시국회의라는 걸 만들기로 했다. 성난 여론을 쫓는 데 골몰하는 모습이다. 효과는 봤을까.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둘 지지율은 미동”이라고 했다. 특히 “중도보수 성향인 안 전 대표는 대안 없이 비판만 해 여당 이탈층을 놓쳤다”고 했다.

문 전 대표는 상대적으로 신중하다. 중대 결심을 들먹이며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떼라”고 윽박지르나 탄핵·하야는 되도록 삼가고 있다. ‘부자 몸조심’하는 양 비친다.

그는 민주당 대선후보가 될 것으로 대부분 예측한다. ‘문재인=대통령’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선뜻 동의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최순실 파문은 여야 대선경쟁 구도를 흔들고 있다. 강적이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최대 피해자다. 지지율이 떨어지고 기댈 언덕도 무너졌다. 문 전 대표는 반사이익을 얻었을까.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2%∼3%포인트 올랐다고 한다. 당 지지율 상승폭에는 7%∼8%포인트 뒤처진다. “문재인은 대통령감”이라는 유권자가 별로 늘지 않은 셈이다.

계파를 건사하고 지지층을 결집하는 건 문 전 대표 강점이다. 수권정당의 정책·비전을 제시하며 통치능력을 보여주는 건 미흡하다. ‘송민순 회고록’ 대처는 비근한 예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논란은 “과거에는 몰라도 지금 입장은 찬성”이라고 정리해야했다. “기억 안 난다”는 미심쩍은 발언은 중도층에 불안감을 키웠다.

그는 박 대통령에게 가장 먼저 거국중립내각을 제안했다. “야당도 협조하겠다”고 공언까지 했는데 여당이 받자 말을 바꿨다. 김병준 총리 지명 철회와 국회 추천 총리도 강력히 요구했다. 박 대통령이 수용하자 “민심과 동떨어져 있다”고 또 외면했다. 어젠 “내치와 외치를 구분할 수 없다”며 군통수권까지 포기하라고 했다. 반대만 하면서 국정 공백을 방치하는 건 안 전 대표와 다를 바 없다. 자꾸 조건을 붙이는 행태는 솔직하지도 않다.

허범구 논설위원
‘가보지 않은 길’은 ‘가지 않는’ 게 문재인 스타일이다. 외연 확대를 위한 중도 행보는 기피했다. 집토끼만 끼고 도니 표의 확장성과 본선 경쟁력을 의심받는 건 당연하다. 지금 이를 털 수 있는 멍석이 깔렸으나 응하지 않았다. ‘사이다 발언’은 시원하지만 멍든 국정을 낫게 하는 건 아니다. 노만 외쳐선 사심 없는 구국의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없다.

야 3당은 대표 회동에서 국회 추천 총리 제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걷어찼다. 당장 총리 인선을 시작하더라도 갈 길이 멀다. 국정이 한없이 겉돌면 야당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문 전 대표가 적극 나서야 한다. 난국 수습의 역랑과 책임을 보인다면 국민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토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하도 힘들어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대연정에 이어 개헌을 제안했다.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뿌리쳤던 박 대표. 2007년 대선의 주인공은 그가 아니었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이겼다. 알다가도 모를 게 민심이다.

허범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