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국제 관계와 대외 정책의 통념을 무시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됨으로써 한반도는 새로운 한·미 관계를 써 내려가게 됐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고, 소형 핵탄두를 장착한 장거리 미사일의 실전 배치를 서두르고 있어 북한 문제는 차기 미국 정부가 직면할 첫 번째 위기가 될 것이라는 게 워싱턴 정가의 분석이다. 이 같은 대격변의 시기에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로 정상적인 국정 수행이 불가능한 레임덕에 빠져들고 있다. 트럼프 시대를 맞는 한·미 관계를 미국 전문가 인터뷰 시리즈를 통해 긴급 진단해본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위기에 처해 있으나 미국에서 일어나는 극적인 변화를 한가롭게 지켜보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나서기 어려우면 한국 정부의 외교안보팀 책임자들이 앞장서서 전환기의 한·미 관계를 관리할 태스크포스를 가동해야 한다. 한국 정부 대표단이 곧 출범할 트럼프 당선자의 정권 인수위 관계자들과 직접 만나 북한 핵 문제와 한·미 동맹 강화 방안 등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주한 미국 대사를 역임한 제임스 레이니 에머리대 명예총장은 9일(현지시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한·미 동맹 관계는 지난 60년 이상 발전을 계속했다. 트럼프 당선자가 대통령 선거전에서 쏟아 놓은 발언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지만 한·미 관계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한·미 양국 정부 당국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한·미 관계의 초점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현상 유지에 만족하지 않는 것 같다. 북한 핵 문제 등 특정 현안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으면 과감하게 이를 타개하려 드는 스타일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도 만날 것인가.
“트럼프가 대선 유세 과정에서 김 위원장과 만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다분히 즉흥적인 대꾸로 여겨졌다. 트럼프의 외교 안보 보좌진이 갖춰지면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한 뒤에 북·미 대화 재개 방안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대통령 후보가 당선된 뒤에 기존의 입장이나 발언에서 후퇴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도널드 트럼트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대선후보 시절 그의 주한미군 철수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용산 미군기지. 연합뉴스 |
“트럼프 당선자가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가 있다. 지금 당장 한국에 주한 미군 주둔 비용 분담 문제부터 제기해야 할 정도로 이 사안이 시급한 게 아니지 않나. 다만 트럼프는 비즈니스맨 출신이고, 기업인다운 기질이 있어 한국에 이 문제를 반드시 제기할 것이다.”
-트럼프가 주한 미군 철수를 고려할 수 있나.
“주한 미군 철수는 현재로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한반도에서 긴장이 완화하고, 한국에 대한 군사적인 위협이 현저하게 줄어든다면 주한 미군 감축 등을 고려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나. 그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데 주한 미군을 어떻게 철수할 수 있겠느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폐기 또는 재협상 가능성은.
“국가 간 협정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폐기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트럼프 정부가 미국에 유리하게 재협상을 하자고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한국의 핵무장도 허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트럼프의 외교 안보팀이 한반도 상황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며 이때 한국이 핵무장을 하도록 권유하자는 얘기를 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트럼프는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는 현실에 직면해 한·미 관계를 훼손하기보다는 강화하는 쪽의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레이니 약력=△예일대 졸 △예일대 석사·박사 △미 육군 방첩대 요원으로 한국 근무 △연세대 교수 △밴더빌트대 교수 △미 에머리대 신학대학장 △에머리대 총장 △주한 미국대사 △에머리대 명예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