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황에 나오지 않는건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무임승차하는거니까요.”
충남 천안에 사는 직장인 박모(26)씨는 주말 휴식을 반납하고 서울 광화문 광장으로 KTX를 타고 올라왔다. 동료 없이 혼자 상경한 박씨는 “광우병 파동 때 고3이라는 이유로 촛불시위에 참석하지 못한 마음의 짐이 있다”며 “나같은 사람들이 모이면 힘이 되고 그게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최순실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원하는 각계각층의 분노가 폭발한 12일 2030세대 청년들은 홀로 참여한 ‘혼참러’, ‘댄스시위’ 등 다양한 모습으로 집회에 참여했다. 이들을 광장으로 끌어낸 것은 분노였지만, 표현은 폭력 대신 각자의 방식으로 승화한 모습이었다.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2016 청년총궐기’에는 개성있는 ‘혼참러’들이 등장했다. 혼참러는 단체가 아닌 혼자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을 칭한다.
정문경(20·여)씨는 ‘이불 박근 위험혜, 하야 순시려’라고 풍자한 손팻말을 들고 홀로 참석했다. 정씨는 “원래 같이 오기로 했던 친구들이 바쁘다고 해 혼자 나오게 됐다”면서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면 나오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혼참러인 대학생 지승환(19)씨는 정장 차림으로 흑백 태극기를 영정사진으로 갖고 나왔다. 스스로 이런 퍼포먼스를 기획했다는 지씨는 “시국이 이 지경인데 안 나올 수가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원생인 박모(27)씨는 대학 후배 등과 함께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치킨 판매’ 퍼포먼스를 벌여 사람들의 폭소를 끌어냈다. 박씨는 “집회에는 참여하고 싶은데 어떤 방식으로 하면 거부감 없이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 동료들과 함께 만든 것”이라며 “과격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즐겁게 봐주셔서 뿌듯하다”고 밝게 웃었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분노의 행진’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청년총궐기는 4000명이 넘는 청년과 대학생들이 모여 현 시국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지만 폭력적인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행렬 사이사이에는 닭 머리 모양의 가면을 쓴 학생이 오방색 꼬리 끈을 달고 앞장서거나 한복 차림에 박 대통령의 가면을 쓴 채 오방색 풍선 수십개를 들고 나타나 시민들의 주목을 끌었다.
시위대는 거친 구호 대신 인디밴드인 ‘10cm’노래 ‘아메리카노’의 한 구절인 ‘아메아메아메’를 ‘하야하야하야’로 고쳐 부르거나, 아이돌 가수인 빅뱅의 ‘뱅뱅뱅’의 노래 구절을 개사해 따라 불렀다. 마로니에 공원부터 내자동 로터리까지 이어진 행진 내내 트럼펫과 탬버린, 북, 호루라기 등이 등장했다. 청년들은 노래에 맞춰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면서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광장시장 쪽에서 행진 행렬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던 시민 김동현(42)씨는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모여 다양한 모습으로 한 목소리를 내는 것에 눈길을 빼앗겼다”며 “과격하지 않게 평화적으로 집회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니 우리의 집회 수준이 높아진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글·사진=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