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서울 도심은 또다시 수많은 촛불 인파로 덮였다. 주최 측 추산 참가 인원 100만명(경찰 추산 26만명)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했던 19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인파다. 경찰 추산 규모로도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규탄 시위, 2008년 미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 수준을 넘는다. 무엇보다 광화문 일대에 이동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군중이 모였으나 경찰과 큰 충돌 없이 평화롭게 집회를 마무리해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민노총 주최의 민중총궐기대회 참가자들이 청와대 근처 내자동 로터리 쪽으로 집결하면서 경찰과 일부 몸싸움이 빚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 시민 참가자들이 자제를 요구했고 경찰도 ‘비폭력’으로 대응하면서 유혈 충돌은 없었다. 다수의 시민들은 흐트러짐 없이 자리를 지켰고 밤늦도록 쓰레기를 치웠다. 이들이 질서정연하게 외친 구호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이었다.
이제 박 대통령이 답을 내놓을 차례다. 대통령의 두 차례 대국민 사과와 ‘여야 합의 총리’ 제안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한 민심에 턱없이 모자랐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어제 “대통령께서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를 무거운 마음으로 들었으며 현 상황의 엄숙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지금 대한민국 국정을 책임질 자격이 없다’는 민심에 호응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우선 “모든 국정에서 손을 떼겠다”는 선언부터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당장 이번주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다. 대통령을 비공개 독대한 재벌 회장들을 소환조사한 검찰은 15∼16일쯤 대통령을 직접 조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미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대통령 지시’가 확인된 상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몸통’이 박 대통령이란 의혹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2선 후퇴는 불가결하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사상 초유의 검찰 수사는 그 결과에 따라 걷잡을 수 없는 민심의 폭발을 몰고올 수 있다.
대통령의 2선 후퇴, 탈당 선언이 국정 정상화로 이어지려면 야당의 후속조치가 뒷받침돼야 한다. 국정 공백을 최소화할 총리 추천이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 총리 권한의 범위는 물론 거국중립내각 구성, 조기 대선 여부 등 향후 정치 일정에 대한 정치적 합의도 중요하다. 헌정 질서 내에서 총리 중심의 권력 이양이 이뤄지고 국민을 설득할 로드맵을 내놓을 책임이 야당에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아직도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고집한다면 국회가 탄핵 수순을 밟는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어제 비주류 중심의 비상시국회의에서 “대통령은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의 길로 가야 한다”고 했다. 헌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탄핵 소추를 추진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대통령 결단에 기대 국정 공백 사태를 마냥 방기할 수 없다. 촛불 민심이 횃불처럼 활활 타오르길 기다려선 안 된다.
[사설] ‘100만 촛불’ 민심에 대통령 국정 손 떼겠다 답해야
기사입력 2016-11-14 01:06:08
기사수정 2016-11-14 01:06:08
기사수정 2016-11-14 01:06:08
대통령 이번주 검찰 조사 / 2선 후퇴·탈당 선언 안 하면 탄핵 절차 밟는 수밖에
Copyrights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