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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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관치 그림자’ 못 걷어내면 우리은행 민영화 성공 못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우리은행 민영화가 드디어 본궤도에 올랐다. 정부는 그제 예금보험공사가 보유 중인 우리은행 지분 29.7%를 한화생명 등 7개 과점주주에게 매각했다고 밝혔다. 2001년 공적자금을 투입해 우리금융지주 지분 100%를 사들인 뒤 무려 15년 만의 일이다.

우리은행 민영화는 이제 첫걸음을 뗐을 뿐이다. 이번 매각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예금보험공사 지분은 21.34%나 된다. 민영화가 성공적으로 안착하자면 정부가 이미 약속한 대로 은행장과 사외이사 선임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한다. 민영화의 원래 취지대로 은행에 경영 자율권을 보장해야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 수립이 가능해진다. 우리은행의 실적 개선은 물론이고 금융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우리은행은 그동안 4차례나 민영화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인사권과 경영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정부 탓이 크다. 우리은행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위원장들이 민영화에 목소리를 높였지만 말뿐이었다. 그 사이 ‘주인 없는 은행’에는 낙하산들이 판을 쳤다. 은행의 수장은 정권 실세와 연줄이 닿은 사람으로 채워지기 일쑤였다. 관치의 그림자는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도 어른거린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와 비선 실세들이 포스코와 KT의 경영과 각종 이권에 관여한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청와대 수석이 포스코 측에 “차기 회장은 권오준으로 정해졌다”고 통보했고,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씨는 권력을 동원해 포스코 계열사의 지분을 강탈하려고 했다. KT에서는 청와대가 특정 인사를 본부장에 채용토록 강권하고, 뒤이어 차씨와 그의 지인이 영상광고 11편을 수주했다고 한다. 하이에나 같은 먹이사냥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정부가 소유 지분을 전량 매각해 민간 회사로 탈바꿈한 기업에서 벌어진 일이다.

민영화는 단순히 정부 지분만 판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관치와 낙하산의 유혹을 완전히 떨쳐내는 일이다. 정부가 남은 은행 지분을 갖고 경영에 계속 간섭하려 든다면 우리은행 민영화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관치로 인사권을 주무를 생각일랑 꿈에도 생각지 말아야 한다. 권력을 빙자해 은행과 기업의 인사를 주무르는 구습은 이번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종언을 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