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사설] 야당 수준 보여준 추 대표의 영수회담 철회 소동

당내 반발에 밀려 백지화
야3당 대통령 퇴진 공조
난국 수습 더 어려워져
박근혜 대통령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정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오늘 갖기로 했던 영수회담이 어제 밤 백지화됐다. 회담 장소와 시간까지 확정된 상태에서 추 대표가 당내 반발에 밀려 참석을 철회한 것이다. 먼저 회담을 요청했던 쪽은 추 대표였다. 이번 영수회담은 최순실 파문으로 인한 난국을 정치적으로 수습할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로 여겨진 만큼 국정 정상화는 더 어렵게 됐다. 제1야당 대표의 경박과 무책임한 행태가 황당할 따름이다.

추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영수회담은 철회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의원들이) 줬고 그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국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중요한 회담을 제안하면서도 당내 여론수렴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회담 제안은 그제 최고·중진연석회의 등을 비롯해 공식적인 당내 회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추 대표가 어제 오전 느닷없이 회담을 제안할 때부터 논란과 의구심이 일었다. 워낙 튀는 개인 플레이를 종종 했던 ‘전력’ 때문이다. 결국 12시간만에 회담을 전격 철회하면서 이를 다시 입증한 꼴이 됐다. 의총에서 여론을 수렴한 뒤 회담 제안 여부를 결정하는 건 정치 초보자도 알 수 있는 상식적 수순이다.

추 대표는 기회 있을 때마다 박 대통령의 불통을 비판했다. 김병준 총리 내정 시엔 사전 통보가 없었다며 비토한 바 있다. 그도 박 대통령과 다를 바 없다. 추 대표는 회담을 요청하면서 “민심 전달의 막중한 역할이 제1야당 대표에 있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는 결국 빈말이 됐다.

민주당은 의총에서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것으로 공식 당론을 변경했다. 국회 추천 총리로의 전권 이양과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라는 기존 입장에서 더욱 강경해진 것이다. 추 대표 제안에 반발하며 혼선을 빚었던 국민의당과 정의당도 회담 백지화를 환영하며 야권 공조 강화를 다짐했다. 야3당이 대통령 퇴진으로 전열을 급속히 재정비하는 흐름이다. 청와대는 대통령 입장을 알릴 수 없게 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청와대 회담이 물 건너가면서 정국은 ‘질서 있는 수습’을 기대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게 됐다. 박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은 뒤에는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치적 도덕적 책임뿐 아니라 법적 책임도 져야 하는 처지가 된다. 헌법에 따라 형사상의 소추는 받지 않더라도 탄핵소추를 요구하는 여론은 비등할 것이다.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는 “민심이 야당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라고 했다. 추 대표가 새겨들어야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