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김현주의 일상 톡톡] "이러려고 정밀지도 만들었나"…커지는 반출 반대 목소리

구글의 정밀 지도 반출 요청에 대한 우리 정부의 결정이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이와 관련한 협의체를 열었으나,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심사를 연기했는데요.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는 기업에 한국의 정밀 지도를 내어줄 경우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입니다. 관련 산업의 발전을 위해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계속된 구글의 거짓말로 신뢰를 잃고 있는 가운데 한 기업의 정책이 국가의 법령과 주권보다 우선한다는 구글의 오만한 태도가 도마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미국 정부가 해당 사안과 관련해 한국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업계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돼 우리 정부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구글의 요청을 수용할 수 밖에 없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는데요. 반출 허용에 대해 일각에선 내년 초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기 전 지도 반출을 허용하는 것은 ‘생색 안 나는 협상카드 낭비’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지도 데이터 반출 조건으로 우리 정부가 제시한 위성 사진 ‘블러 처리’(지도상에서 일부 지역을 흐리게 처리하는 것)를 구글이 수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지도 반출을 협의체가 허용한다면 이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공간정보 관련 산업규모는 7조원에 이르며, 관련 기업 3000곳에 10만명 이상의 종업원이 종사하고 있습니다. 정밀 지도 반출과 허용을 놓고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 지 업계의 눈과 귀가 집중될 전망입니다.

지도반출협의체는 오는 23일까지 구글의 1대5000 정밀지도 반출 신청에 대한 허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최종 결정을 앞둔 가운데 지도 논의를 위해 구글 임원이 지난달 말 방한했지만, 기존 입장에서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요구사항에 대한 양보 없이 구글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기존 주장만 마치 앵무새처럼 되풀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의 입장을 좀 더 듣겠다는 것이 이번 의사결정 유보의 주된 이유 중 하나였는데, 기존 입장을 고수한다면 정부 협의체로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이젠 국회에서도 정밀 지도 반출에 부정적인 기류가 팽배해지고 있다"며 "정밀 지도데이터 반출에 따른 안보 문제뿐 아니라 국내에서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면서도 세금을 거의 안내는 구글의 사업행태가 지속적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아몰랑' 구글, 결정 앞두고 기존 입장만 고집…지도 반출 반대 여론 재점화

지난달 14일 열린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도 반출을 구글 마음대로 하게 하면 안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면서 윤병세 외교통상부 장관을 강하게 몰아 붙였다.

산업계에서도 이번 지도 반출이 허용될 경우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라거나, 지도 데이터 반출은 국내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분명하다는 등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글 지도 반출에 대한 승인 결정이 다가옴에 따라, 우리 국민들의 혈세(血稅)로 만든 지도를 넘겼을 때 후폭풍에 대해서도 다시 따져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구글이 반출을 원하는 정밀 지도는 국민세금 1조원 이상이 들어간 엄연한 국가자산이다.

실제 정부는 1966년부터 세금을 투입, 국내 지도를 구축해 오고 있다. 1991∼2001년에는 1차적으로 1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한국 지도의 디지털화 작업을 수행했고, 이듬해부터는 항공사진을 촬영했으며, 지명 정비 작업을 하는 등 매년 500억∼800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정밀지도 반출, 세금 안 내는 구글만 배 불려 주는 셈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사업자들은 이 지도 정보를 가져다가 부가가치를 창출했고, 수익에 합당한 세금을 납부해왔다. 그렇게 걷어 들인 세금은 직간접적으로 국가 지도의 품질을 개선하는 데 다시 사용됐다.

구글도 한국 정부의 지도를 가져다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을 하려고 하지만, 구글은 유한회사라는 이유로 현재 한국 내 매출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앱 마켓인 '구글 플레이스토어' 등을 통해 적지 않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정확한 내역은 밝히지 않고 있다.

또 구글은 검색 광고의 경우 싱가포르 법인 명의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등 한국 정부에는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지도 반출이 허용되면 국민 혈세로 만든 지도 데이터로 세금을 안 내는 구글의 배만 불려 주는 셈이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세금을 안 내는 구글 배나 불려 주려고 국민 혈세를 들여 정부가 정밀지도를 제작했나 자괴감까지 든다”며 “정부의 책임 있는 결정을 기대한다”고 꼬집었다.

김인현 한국공간정보통신 대표도 "우버를 비롯 구글과 연대했던 기업들 모두 지도 문제로 현재는 경쟁관계로 돌아선 상황에서 우리 국민의 돈으로 만든 지도 데이터를 구글의 발전을 위해 헐값에 제공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국내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사후 관리규정도 없어

우리 정부가 헐값으로 넘긴 지도 데이터로 구글이 신규 유료서비스를 만들 경우 우리 국민과 기업들은 결국 자기 세금으로 만든 서비스를 다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사용해야 한다는 문제도 생긴다.

유명 국산 내비게이션 '김기사'를 만든 박종환 전 록앤올 공동대표는 “구글은 반출된 지도로 실시간 교통 상황·상권 분석·관심 장소(POI) 검색 등의 고급 데이터를 만들어 비싸게 팔거나, 자신만의 사업에 쓸 것"이라며 “실제 몇 년 전 일본에서 내비게이션 사업을 하려고 구글에 관심 장소 검색과 관련해 데이터·서비스 연계(API 제공)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더니 엄청난 사용료를 달라고 해 포기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국외로 반출된 지도 데이터 등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구체적 법·제도 절차와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구글뿐만 아니라 다른 글로벌 업체의 반출 요구가 나올 상황까지 고려한 표준 절차를 마련해 국민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경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구글의 지도 데이터 반출 요청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지만 정부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국민과 국가의 중요한 데이터가 반출될 경우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보호할지에 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