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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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능력중심사회 구현과 정유라

‘빽’과 부정 판치는 세상… 공정과 평등은 공염불
박근혜정부의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 등에 대한 교육부의 특별감사가 15일 끝났다. 교육부는 지난달 31일 시작한 감사를 당초 11일 끝낼 예정이었으나 4일 연장했다. 사안이 중대하고 추가로 확인할 사항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국정 핵심과제로 강력하게 추진한 능력중심사회 구현이 공염불(空念佛)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대통령을 등에 업은 최씨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과정이 의혹투성이기 때문이다. 정유라가 최씨 딸이 아니었다면 과연 특혜를 받아 입학이 가능했을까. 

지원선 선임기자
능력중심사회란 모든 구성원에게 공정하게 능력을 개발할 기회를 제공하고, 개인이 갖춘 능력을 차별 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를 말한다. 과거 우리나라는 능력중심사회 구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여전히 개인의 직무 능력보다는 학력이나 학벌, 부모의 배경 등에 따라 인력 채용과 배치 등이 좌우돼 왔다. 박 대통령은 이를 타파하기 위해 능력만 있으면 인정을 받고 대접을 받는 사회 풍토를 조성하겠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 왔다.

이번 교육부 특별감사의 중심에는 정유라가 있다. 그동안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유라는 2014년 9월 실시된 이화여대 2015학년도 수시모집 체육특기자전형에 합격했다. 정유라는 원서접수 마감 이후인 같은 달 20일 아시안게임 승마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하지만 당시 이화여대의 입학규정은 원서접수 이후 수상실적은 반영되지 않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정유라는 면접에서 최고점을 받아 합격했다. 수상실적이 반영됐다는 의혹을 사는 이유다. 게다가 학칙이 변경돼 재학 중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무성의한 리포트를 내는 것만으로 학점을 ‘헌사’받았다.

교육부는 이 같은 의혹에 따라 특별감사에서 이화여대가 2015년도 체육특기생 대상 종목을 늘리면서 승마를 포함한 점, 입학과정에서 입학처장이 ‘금메달을 가져온 학생을 뽑으라’고 말한 점, 원서 마감일 이후에 획득한 금메달이 서류평가에 반영됐다는 점 등을 집중 살폈다.

교육부는 이르면 오는 18일 이화여대 감사 결과를 발표한다고 한다. 아직 감사 처분과정이 남아 있지만 좌고우면할 것 없다. 정유라의 부정입학 의혹과 부실 학사관리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유라 입학을 취소시키고, 연루된 이화여대 교수 등 관련자들은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입시부정은 사회와 교육 정의에 도전한 중대하고도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더욱이 권력을 등에 업은 자와 결탁한 사람 모두 공범이다. 특히 최고의 지성인들이 구성원으로 있는 대학에서 이런 일이 저질러졌다면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그게 돈과 권력, 로비와 결탁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천민자본주의를 혁파하고 제대로 된 능력중심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또 정유라 때문에 상대적 상실감과 박탈감을 강하게 느끼고 허탈감에 빠져있는 청소년들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게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2일 시민 100만명이 운집한 촛불집회 등 최근 시국 관련 집회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뭐 하나’, ‘이러려고 열심히 살려고 했나’ 등의 청소년들의 자조적인 외침이 왜 나왔는지 곱씹어봐야 한다.

민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독재로 일관하다 몰락한 이승만정권의 자유당 시절에 권력과 배경이 없는 사람들이 죽어가면서도 ‘빽’, ‘빽’ 했다는 말이 현재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오버랩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지원선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