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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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갤러리] 감정의 감옥을 벗어나… 나를 자유롭게

김승영 작가의 ‘슬픔’은 6∼7세기 가장 대표적인 불교 조각상으로 알려진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을 변형시킨 작품이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 해탈과 초월의 부처의 도상을 슬픔과 고뇌가 가득한 도상으로 탈바꿈시켰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이면 누구나 내재해 있는 슬픔 등 보편적인 감정에 속박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감정을 컨트롤하는 뇌를 쇠사슬로 형상화해 고장 난 저울에 올려놓기도 했다. 인간 감정의 무게는 쉽게 가늠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권위적인 바람둥이 아버지로부터 ‘폐기’당한 어머니를 보고 자란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는 “나는 감정의 죄수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만 하고, 잊어야만 하고, 용서해야만 한다. 그것만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고 고백했다. 그의 말처럼 김승영 작가도 자신의 작업이 감정의 속박을 덜어주는 수단이라고 했다.

(브론즈 88x42x50cm,12월 16일까지 사비나미술관)
영화 ‘사랑과 추억’은 감정의 사슬을 잘 보여준다. 어느 날 10대 주인공의 집에 근처 교도소에서 탈옥한 죄수가 침입한다. 탈옥수는 어머니와 여동생 등을 성폭행하고, 뒤늦게 귀가한 주인공의 형이 이를 목도하게 된다. 결국 형은 집에 있던 엽총으로 탈옥수를 쏴 숨지게 한다. 가족들은 죄수의 시체를 몰래 묻고 애써 ‘아무 일이 없었던 거야’라며 스스로를 단속하며 살아간다. 세월은 그렇게 흐르는 듯했지만 불행의 씨앗은 잉태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주인공의 형은 자살하게 되고, 여동생은 여러 번의 자살 시도 끝에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된다. 주인공도 원만하지 못한 가정생활로 이혼 위기에 처한다. 비극적인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형국이다. 겉으로는 몰라도 속으론 부정적인 감정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는 영화다. 감정의 감옥에 갇히면 주체적인 결정을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요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배경을 떠올리게 해준다.

살다보면, 우리는 어떤 일이나 사람들에게 분함, 억울함의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불교에서는 이런 감정들마저 집착이라고 내려놓으라고 한다. 명상의 시작도 이런 감정들을 해방시키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분노를 석방시키는 것이 감정의 감옥에서 자신을 탈출시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텅 비우는 일이다. 비로소 우리는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 진정 살아 있는 자유존재가 된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