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밀착취재] 손님 몰려도… 파리 날려도… "나라부터 안정됐으면"

광화문 일대 상점 희비… 애국심은 한마음
“장사가 잘 돼서 좋긴 한데 시국이 이러니 마냥 기뻐할 수도 없네요.” 15일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식당 사장 A(52·여)씨는 역대 최대 규모였던 ‘11·12 민중총궐기 촛불집회’ 당일 자신의 가게도 기록적인 매출을 올렸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2일)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손님이 쉴 새 없이 밀려들었다”며 “너무 힘이 들어 새벽 4시쯤 문을 닫았는데 옆 가게는 아침 7시까지 영업했다더라”고 귀띔했다.

지난 주말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100만명(주최 측 추산)이 운집하면서 광화문 일대 편의점과 식당, 커피전문점 등의 매출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말마다 촛불집회가 이어지며 양초와 종이컵 등 시위 관련 물품 판매량이 껑충 뛰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식 창조경제가 빛을 발했다”고 비유했다.

편의점 업체 CU(씨유)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첫 대규모 촛불집회 이후 2차 촛불집회(5일)를 거쳐 3차 집회(12일)까지 보름 동안 전국 양초 매출은 전년 대비 102% 증가했다. 특히 100만 시민이 몰렸다는 3차 촛불집회 당일에는 양초 매출이 678%나 늘었다고 CU 측은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한 촛불집회에 100만명이 몰린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 식당가 등에 손님들이 붐비고 있다.
주류 증가세도 눈에 띈다. CU 관계자는 “소주 매출은 전년 대비 22% 증가했고 맥주와 막걸리 매출 역시 각각 15%, 4% 올랐다”며 “최순실 게이트로 국민들의 분노와 시름이 깊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 주말 광화문광장 주변 골목 곳곳에서는 자리를 펴고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분노와 회한을 쏟아내던 이들이 상당수 목격됐다.

GS25는 광화문 일대 20개 점포의 매출을 분석한 결과 지난 12일 하루 매출이 지난해 같은 날과 비교해 2∼3배 늘었고 세븐일레븐도 광화문 지역 점포 10곳의 평균 매출이 117.5%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일대 커피전문점(엔제리너스)과 패스트푸드점(롯데리아) 역시 전주에 비해 매출이 66∼76%나 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경찰의 차벽으로 통행이 차단된 경복궁역 인근 자하문로 일대나 대규모 행진이 진행된 종로와 을지로 일대 상점, 포장마차 등은 사실상 장사를 접어야 했다. 그러나 상인들이 집회와 관련해 경찰이나 자치구에 제기한 민원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게 우선인 만큼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것이다.

종로3가 서울극장 인근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김모(53·여)씨는 “행진 행렬과 함성으로 영업이 어려웠다”면서도 “마음으로는 행진하는 시민들과 함께 구호를 외쳤다”고 말했다. 경복궁 방향 자하문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54)씨는 “(12일) 차벽에 막혀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고 울상을 지으며 “매상도 매상이지만 대통령이 빨리 결단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종로구 내자동의 한 주점 주인 B(34)씨는 “저는 둘째치고 종업원들이 집회에 참가하고 싶어해 특별히 쉬었다”며 “대박 났다는 가게가 많다는 말도 있지만 종업원들 보기에도 떳떳하고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주말 도심을 뒤덮는 촛불집회가 계속 이어지면서 광화문 일대 상인들 간 희비는 엇갈렸지만 나라 걱정을 우선하는 애국심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식물대통령이나 다름없는 박 대통령이 하루속히 물러나 국정이 올바르게 돌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글·사진=김선영·김준영 기자 00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