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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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미래다] 당신의 '스토리·개성'… 좁은 취업문 여는 ‘키’

천편일률 스펙보다 스토리·개성… 오디션형… 직무 맞춤형… 패기·열정형 / 기업들 이색 채용면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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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고 경직된 공기, 어두운 색의 정장, 면접관과 지원자들이 나란히 대면해 앉은 모습 등이 연상되는 전형적인 채용면접 풍경이 바뀌고 있다. 2009년쯤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이색채용 경향은 각 기업 특성에 맞게 점점 더 다양화하는 추세다. 자유롭게 자신을 소개하거나 주제에 대해 발표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오디션형, 기업이나 직무를 보다 세부적으로 평가하는 맞춤형, 기업과 업무 관련 애정도를 측정하는 열정형 등이 대표적이다.


평소 ‘여리여리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최모(28·여)씨는 오디션 형식으로 진행된 한 기업의 면접장에서 맨밥을 퍼먹은 일화로 주변의 화제를 모았다. 겉보기와 다른 뚝심을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이색적인 아이디어에 심사위원들은 황당해하면서도 웃음을 터뜨렸다.

또 다른 지원자 임모(28·여)씨는 면접관 앞에서 살사 춤을 추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공동체라디오 진행 경험이 있는 서모(29·여)씨는 해당 기업을 짝사랑하는 자신의 사연을 읽어주는 DJ가 되어 독특한 자기소개를 했다.

모두 채용과정에서 천편일률의 스펙이 아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와 개성을 드러낸 이들의 사례다. 2016년 현재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이색채용 방식을 통해 기업과 보다 잘 맞는 지원자를 선발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 같은 채용혁신은 기존 방식으로는 볼 수 없었던 지원자의 창의성과 잠재력 등을 끌어낼 수 있고 스펙에 구애받지 않는 ‘열린 채용’ 방식으로 호평받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이 같은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16일 과도한 스펙을 요구하지 말고 재학생 우대조항을 폐지할 것을 회원사에 요청했다. 


SPC그룹의 ‘관능면접’에 참가한 지원자들이 맛과 향에 대한 감각을 평가받고 있다.
◆자유롭게 능력을 발휘하는 장… ‘오디션형’

롯데그룹은 ‘스펙태클 오디션’, 현대백화점·현대홈쇼핑·현대그린푸드는 ‘스펙타파 오디션’을 통해 스펙은 제외한 채 자기 PR 동영상이나 서류, 직무 관련 과제 수행만을 평가한다.

종합콘텐츠기업 CJ E&M은 신입PD 선발 때 서류전형을 통과한 이들을 대상으로 오디션 전형을 치른다. SK와 KT는 각각 ‘바이킹 챌린저’, ‘스타오디션’을 통해 지원자의 끼와 능력을 평가한다. 신세계그룹도 ‘드림스테이지’라는 직무오디션 면접을 통해 특정 주제에 대한 지원자의 10분 발표, 5분 질의 응답 시간을 갖는다.

지원자 입장에서도 활용도가 높다. CJ E&M의 신입PD 오디션에 참가한 박상이(26)씨는 “준비된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샘표의 ‘요리면접’에 참가한 지원자들이 팀을 이뤄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직무맞춤형’으로 보다 더 구체적으로 평가

기업의 성격이나 직무 관련성을 반영한 다양한 ‘맞춤형 평가방식’도 자리 잡았다. 성별, 종교, 학교, 학점, 어학점수에 차별을 두지 않는 ‘5무(無) 열린채용’을 표방하는 샘표는 요리면접을 실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식품회사 직원이 요리에 대한 기본을 갖추고 주부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4∼5명이 한 팀이 돼 주어진 재료로 테마를 정해 요리를 만들고, 주제와 특징을 면접관에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평가의 핵심은 요리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가 아니라 요리 과정에서 나타나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기획력, 팀워크, 지원자의 평소 인성과 태도 등이다. 샘표 인사담당자는 “튀김 요리를 하다 뜨거운 기름이 쏟아져 다들 당황하던 순간에 침착하게 이를 수습한 지원자가 최종 합격으로 이어진 적이 있다”며 “이에 비해 위계질서를 강요하거나 간장을 마시는 등 호기를 부리는 지원자들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등을 운영하는 SPC그룹은 지원부서에 관계없이 모든 지원자들이 ‘관능평가’와 ‘디자인 역량 평가’를 거친다. 관능평가는 소금물·설탕물 농도 구분하기, 시료 향 파악하기 등의 테스트를 매년 조금씩 다르게 내놓는다. SPC그룹 관계자는 “맛과 향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식품에 대한 애정을 갖기 쉬워 업무 몰입도가 높고 높은 업무 성과를 창출한다”며 “트렌드에 민감한 업종인 만큼 제품과 패키지, 점포 인테리어 등에 대한 디자인 안목을 함께 평가한다”고 말했다.

2016년 하반기 CJ E&M 신입PD 오디션에 참가한 지원자들이 오디션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업무 애정도 증명하라… ‘패기·열정형’

이밖에도 지원자의 패기와 열정, 업무에 대한 애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채용방식이 계속해서 고안되고 있다. 제약기업 휴온스는 ‘업계 관계자 명함 20장’을 구해오면 가산점을 주는 독특한 평가가 있다. 신입사원과 직접 함께 일하게 될 1∼2년차 막내 사원이 면접에 나서는 점도 이색적이다. AK플라자는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열정캐스팅’을 통해 차별화된 경험과 역량의 인재를 선발한다. AK플라자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어한 후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이미지나 동영상을 업로드하는 것이 지원 과정의 전부다.

이 같은 채용 방식의 변화는 장기화된 경기침체, 얼어붙은 취업시장 사정과 무관치 않다. 기업은 보다 창의적이고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고를 수 있고, 지원자는 좀 더 전략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기회를 갖는다. 취업준비생의 구직난과 기업의 구인난이 동시에 심화하는 역설 속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기업과 인재를 매칭할 수 있는 방편이라는 평가다.

잡코리아 변지성 팀장은 “저성장이 계속되면서 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 입장에서 창의적이고 역량 가진 인재를 선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스펙보다는 기업에 당장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고, 고객 변화 흐름 등을 감지해 대안책을 내놓을 수 있는 인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이색채용이 늘어나는 배경을 분석했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