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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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 대통령 검찰조사 앞두고 국면 전환 노린다면 큰 착각

검찰 대면조사 불응하고
엘시티 비리 엄단 지시
국정 농단 규명 앞장서야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앞두고 청와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박근혜 대통령 변호인이 그제 수사 연기 요청을 하더니 박 대통령은 어제 부산 해운대 관광리조트(엘시티) 비리 의혹 사건에 대한 엄단 수사를 지시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 이후 국정에 거리를 둬온 박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에게 직접 엘시티 비리 사건 수사 관련 지시를 한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김현웅 법무장관에게 “엘시티 사건에 대해 가능한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신속 철저하게 수사하고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 연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고 지시했다고 정연국 대변인이 전했다. 청와대 측은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엘시티 사건에 대통령 측근이 개입했다고 주장한 데 따른 수사 지시라는 설명이지만 야당은 최순실 정국 물타기라고 반발한다. 부산 지역 중심으로 여야 의원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많았던 만큼 ‘엘시티 게이트’를 띄우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엘시티 사건은 인허가 특혜 관련 정관계 로비설이 무성했으니 그것대로 전모를 밝혀야 한다. 대한민국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 게이트’와는 별개 사안이다. 지금 국민들이 주목하는 건 최순실 사건의 진실과 대통령의 책임이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100만 촛불 민심을 “무겁게 느끼고 있다”면서도 퇴진·하야 요구를 거부했다. 엘시티 수사 지시도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국정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 표현일 것이다. 대통령 변호인은 검찰 수사 일정을 연기해 달라며 “원칙적으로 서면조사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얼마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며 “검찰 수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던 기류와는 사뭇 다르다.

검찰은 “대통령이 각종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고 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대통령 혐의를 얼추 꼽아봐도 열 손가락으로 모자랄 지경이다. 검찰이 입수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의 수첩에는 박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대기업 인사 등 지시한 사항이 빼곡히 적혀 있다고 한다. 대통령의 참고인 신분은 피의자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측이 최소한의 조사로 이 국면을 넘길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검찰과 대면조사를 통해 그동안 제기된 국정 농단 의혹을 사실대로 밝히는 게 국민에 대한 대통령의 남은 도리다. 검찰도 강제수사에 준하는 방식으로 진실을 파헤치겠다는 결기를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