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정호성, 청 문건 180건 최순실에 건네… 47건 국가기밀"

최씨, 대통령 자료로 비선 회의”/ 이성한 전 사무총장 폭로 확인 / 안봉근·이재만 관여 단서 못찾아
박근혜정부 첫해인 2013년 10월 정호성(47) 당시 청와대 부속비서관 앞에 한 건의 보고서가 놓였다. 국토교통부 장관 명의로 된 해당 문건 제목은 ‘복합생활체육시설 추가 대상지(안) 검토’였다. 보고서는 수도권 지역 내 복합생활체육시설 입지 선정과 관련해 3개 후보지 가운데 경기 하남이 접근성, 이용 수요, 설치 비용 등 여러 면에서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국토부와 청와대가 수도권 내에서 복합생활체육시설 부지를 검토한 사실은 부동산시장에 영향을 미쳐 땅값 상승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당연히 비밀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 문건은 얼마 안 돼 현 정권의 비선 실세 최순실(60)씨의 손에 들어갔다.

최씨는 K스포츠재단이 설립된 뒤인 올해 초 안종범(57)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공모해 롯데그룹에 70억원 추가 출연을 요구했다. “하남 복합생활체육시설 건립에 들어갈 비용”이라고 명분을 들었다. 롯데는 울며 겨자 먹기로 70억원을 내놓았지만 검찰의 롯데 수사가 임박한 마당에 ‘수사 대상 기업에서 돈을 받는 건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곧 반환됐다.


청와대는 보고 있나 검찰이 ‘최순실 게이트’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 전광판에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이 범행을 공모한 관계”라는 검찰 발표 내용을 전하는 뉴스 자막이 뜨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공개된 정 전 비서관 공소장을 보면 이런 식으로 최씨에게 건네진 청와대 내부문건은 총 180건에 이른다.

문화체육관광부 장·차관급 인선 관련 검토자료를 비롯한 정부 부처 및 공공기관 고위직 인사안, 국무회의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때의 대통령 말씀자료, 대통령 해외순방 일정 등 외교자료 등이 두루 포함됐다. 앞서 예로 든 국토부 보고서 등 정부 부처 보고서와 교육문화수석실 등 청와대비서실 보고서도 유출된 자료 속에 들어 있다.

정 전 비서관은 최씨에게 문건을 건넬 때 이메일을 주로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우에 따라선 정 전 비서관이 종이로 출력한 문건을 직접 들고 최씨를 찾아가거나 제3자를 시켜 최씨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검찰은 유출된 문건 180건 중 47건이 국가기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 전 비서관이 매일 30㎝ 두께의 이른바 ‘국정자료’를 최씨에게 건네면, 최씨가 해당 문건을 갖고서 측근들과 비선회의를 열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이 국정자료라고 부른 것이 실은 대통령에게 보고된 주요 문건을 묶은 책자였던 셈이다. 정 전 비서관이 쓰던 태블릿PC 아이디는 안봉근(50)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이재만(50) 전 총무비서관도 공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은 ‘문고리 3인방’ 중 남은 두 사람도 소환조사했으나 “정 전 비서관의 문건 유출에 관여한 단서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태훈·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