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최순실 게이트 중간 수사 결과 발표 직후 검찰 특별수사본부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 등에게 직권남용 혐의만 적용하고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하지 못한 한계를 꼬집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검찰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60)씨가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을 명목으로 대기업들한테 출연받은 774억원에 제3자 뇌물수수죄를 적용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속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기업들의 재단 기금 출연 과정에서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 그로 인한 ‘대가성’이 규명될지 등은 향후 수사에서 규명해 특별검사팀이 출범할 때까지 혐의 유무를 판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보고 있나 검찰이 ‘최순실 게이트’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 전광판에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이 범행을 공모한 관계”라는 검찰 발표 내용을 전하는 뉴스 자막이 뜨고 있다. 연합뉴스 |
그런데 피고인 3명에 이어 박 대통령의 지위, 역할 등을 아주 자세히 설명한 점에 눈에 띈다. 박 대통령이 이들과 각종 범죄 혐의를 공모했다는 판단 아래 사실상 동등하게 공소장에 기재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정말 피의자로 검찰에 입건됐음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통상 검찰이 피의자로 입건하면 곧바로 신병처리 방침을 결정한다. 혐의가 무겁거나 도주 또는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구속영장을 청구해 신병을 확보한다.
반면 혐의가 비교적 가볍거나 법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크다면 불구속기소해 자유로운 상태에서 재판을 받도록 한다.
문제는 박 대통령은 헌법 84조에 따라 재직 중 ‘형사소추’를 면제받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형사소추란 기소를 뜻하지만 법조계에선 구속영장 청구도 포함된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검찰이 박 대통령 혐의를 확인해 입건했으나 그다음 단계인 신병처리나 기소 등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곤란하다는 얘기다.
통상 피의자로 입건되면 출국금지 조치가 당연히 따라붙지만 이 또한 박 대통령은 예외다. 당장 12월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인데 청와대와 외교부는 “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도주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검찰이 출금을 요청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검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조만간 여야가 합의한 특검이 정식으로 출범하면 검찰 수사의 힘은 급격히 빠질 수밖에 없다. 검찰은 모든 수사 활동을 중단하고 지금까지 압수수색 등을 통해 확보한 수사 관련 자료도 전부 특검팀에 이관해야 한다.
일각에선 검찰이 박 대통령의 주요 혐의 내용을 공개하고 피의자 입건 사실을 명확히 밝힌 것이 곧 활동을 시작할 특검을 의식한 조치라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로선 현직 대통령의 피의자 신분 입건이라는 헌정사상 최초 기록을 세운 ‘공로’를 특검팀에 넘기고 싶지 않았을 것이란 논리에서다.
향후 특검이 어떤 성과를 내든 ‘검찰이 진행한 기존 수사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평가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검찰은 이날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끝으로 더 이상의 공식 발표는 자제하면서 특검 수사 향방을 관망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구속 상태인 송성각(58)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 차은택(47)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을 재판에 넘기는 등 일상적인 수사 활동은 계속된다.
검찰은 지난 18일 체포한 최씨 조카 장시호(37)씨에 대해 이날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며, 21일은 김종(55)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예정돼 있다.
검찰은 조원동(60)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 대해서도 곧 신병처리 방침을 결정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