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한 제약회사의 폐암 신약 임상시험 도중 중증부작용으로 인해 환자 2명이 사망하면서 독일 제약회사와 체결한 기술이전과 임상시험 개발이 모두 중단된 사태는 그간 큰 관심을 모으며 급성장해온 국내 바이오산업계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신약후보 물질의 90%가량이 임상시험 과정에서 실패하는 통계에 비춰 보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왜 대부분의 신약후보 물질은 임상시험에서 실패하게 되는 것일까.
우리 몸에 흡수된 약물은 세포막에 도달해 수용체 단백질에 결합하거나 세포 내로 침투해 특정 분자에 결합함으로써 세포의 기능을 교란한다. 암세포와 같이 유전적 변이로 인해 세포 신호전달 체계에 변화가 유발돼 세포의 증식 신호가 비정상적으로 증폭 전달되는 경우 표적항암제는 증식신호가 전달되는 특정 신호전달 경로의 단백질에 결합해 그러한 증식신호를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접근은 매우 획기적이어서 때론 놀라운 치료 결과를 얻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암세포는 차단된 신호전달 경로를 우회하는 새로운 경로를 찾아내어 결국 항암제 내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몇 가지 항암제를 조합해 처방하기도 하지만 환자별 특성을 고려해 최적의 약물 조합을 찾아내는 것은 큰 도전과제로 남아있다. 임상유전체 연구에서는 환자별 주요 유전자 돌연변이를 파악하고 해당 유전자의 발현을 저해하는 표적항암제를 선별해 치료 적용을 시도하고 있으나 그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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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현 KAIST 교수· 바이오및뇌공학 |
세포는 수많은 다양한 분자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분자들은 각각의 역할과 기능이 있지만 세포 내에서 이들의 활동은 이웃한 다른 분자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이뤄진다. 결국 세포 내 분자들의 조절과정과 작용은 거대한 분자 상호작용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이러한 네트워크의 동적인 변화가 세포의 반응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외부에서 주어진 약물이 특정 분자에 결합하게 되면 분자 네트워크의 활동은 제한되고 변화되며 그 결과 달라지는 세포의 반응은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만들어 내는 분자 네트워크의 특별한 구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피드백’(feedback) 회로이다. 피드백이란 일반적으로 어떠한 시스템의 출력이 다시 입력에 연결돼 출력을 재조정하는 형태의 구조를 일컬으며, 미지의 시스템 내부에 이러한 피드백 구조가 숨겨져 있을 경우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기가 난해해진다. 피드백 회로는 인류가 오래전부터 증기기관의 속도제어와 아날로그 앰프의 신호증폭 등에 이용해왔는데, 오늘날 다양한 공학시스템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피드백 회로는 노이즈나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값을 자동으로 유지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놀랍게도 이러한 설계원리가 오랜 진화를 거쳐 자연적으로 형성된 생명체의 분자 네트워크에서도 발견되는데, 생명현상의 항상성을 유지시켜주는 핵심 장치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생명체의 입장에서 볼 때 약물은 시스템에 변화를 유발하는 요인이다. 이때 피드백 회로는 이러한 변화에도 원래의 기능을 유지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약물 저항성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실제 세포 내 분자 네트워크에는 이러한 피드백 구조 등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신약 개발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명회로의 전체적인 동작 특성을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조절 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분자 타깃을 찾아야 한다. 근래에는 이와 같이 복잡하고 난해한 분자 네트워크의 구조와 기능을 계산과학 기반의 대규모 컴퓨터시뮬레이션 분석을 통해 파악함으로써 신약 개발의 중요한 정보를 찾아내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여러 다국적 제약회사들도 이러한 연구를 직접 시도하거나 관련 벤처회사를 인수하고 있다. 생명의 비밀을 온전히 간직한 생명회로의 베일이 벗겨지면, 신약 개발의 성공률도 곧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바이오산업은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조광현 KAIST 교수· 바이오및뇌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