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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북한만 바라본다"던 국방부…내부 부조리는 '깜깜'

“군은 북한만 바라보겠다”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정국이 극도의 혼란에 빠져든 상황에 대해 군 관계자들이 반복해서 내놓는 언급이다. 국내 정국이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관계없이 오직 북한만 바라보고 소임을 다하겠다는 뜻이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도 24일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북한은 언제든지 국면 전환을 위해 전략적·작전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며 “국내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지만 우리 군은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적만 바라보고 묵묵히 우리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 수뇌부도 “현장 지휘관에게 행동의 자유를 보장해 달라” “선(先)조치 후(後)보고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응하게 해 달라”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수준의 신무기 개발이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25일 특수전사령부를 방문해 대비태세를 점검하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 국방부 제공
하지만 올해 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강도 높은 군 대비태세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장병들의 피로도가 누적돼 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주한미군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등의 이슈들에 대해 국방부가 국내외의 비판 여론에 대응하느라 분주하면서 예하 부대에 대한 관리감독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국방부와 직할부대, 육군과 해군, 공군의 관계를 오랫동안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포착된다. 사드나 한일 GSOMIA처럼 국방부가 전력을 다해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슈가 발생하면 예하 부대에서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사드 배치 문제가 한창이던 8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잠수정에서 수소가스가 폭발해 3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6월에는 군 병원에서 군의관이 소독용 에탄올을 수술용 조영제로 오인해 환자에게 주사해 에탄올을 맞은 환자가 왼팔이 마비됐다. 국방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예하 부대와 조직을 면밀히 관리감독해야 하지만 이슈에 휘말리면 통제력이 느슨해진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 한일 GSOMIA 추진기간 성추문 잇따라

국방부가 지난달부터 한일 GSOMIA 체결을 위해 국민의 비판적 여론에도 아랑곳없이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국방부와 그 직할부대에서는 고급장교들의 추문이 계속 이어졌다.

25일 국방부에 따르면 국방부 직할부대 부대장인 A 준장은 부하 여직원에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를 해 정직 1개월 징계 처분을 받고 본인의 전역예정일보다 한 달 정도 앞당겨 18일 자진 전역했다. A 준장은 다음 달 말 전역을 앞두고 있었지만 징계를 받고 스스로 전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곧 전역할 사람에게 군 당국이 자진 전역 형태로 면죄부를 준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방부 정책부서의 영관급 장교 B씨도 동료여직원을 성추행 및 폭행한 혐의로 군 검찰에 기소돼 조만간 인사조치될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전경.

해외 한국대사관에 파견돼 근무하고 있던 C 준장도 최근 공관 여직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군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C 준장은 “성추행 행위로 여기지 않았다”고 진술했지만 성희롱 등과 같은 행위는 피해자가 어떻게 느꼈는가에 따라 처벌 범위가 결정된다. 국방부는 국방부 여성정책과로 신고가 접수돼 군 당국이 불구속 조치 후 C 준장을 조만간 본국으로 소환해 조사를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에는 국군기무사령부 100기무부대 소속 D 소령이 온라인 채팅으로 성매매를 알선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D 소령은 체포 당시 신분을 밝히지 않았지만 혐의가 드러나면서 자신이 기무사 소속임을 인정했다. 당초 D 소령은 1년 동안 100여건의 성매매를 알선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군 당국의 수사 결과 이보다 10배 많은 1000여건의 성매매를 알선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매매 알선 횟수가 예상보다 높아지면서 동료들에게 성매매를 알선했거나 자신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성 상납’을 했는지 여부도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북핵 대비태세 강화되자 후임병에 근무 떠넘겨

올해 초 강원도 철원의 전방부대에서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한 병사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군의 대비태세가 대폭 강화되자 선임병들이 근무를 떠넘기는 등의 가혹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24일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지난 2월 7일 6사단 GP에서 근무하던 박모 일병은 초소에서 자기 턱에 총을 쏴 자살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지난해 9월 선임병 유모 병장이 근무가 미숙하다며 개머리판으로 박 일병을 때리는 등의 사건이 있었다”며 “부GP장인 손모 중사가 폐쇄회로(CC)TV로 이 모습을 봤지만 가해자에게 내려진 처분은 GP 철수뿐이었다”고 설명했다.

4개월이 지난 올해 1월부터 박 일병은 한 달 가까이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했다. 여기에 선임병들이 떠넘긴 근무를 서느라 영하 10도의 혹한 속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하며 수면 시간도 4시간 이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휴식시간에는 선임병들의 괴롭힘이 이어졌으나 부대 간부들은 이런 사실조차 몰랐다. 이 시기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따른 대북확성기방송 재개, 개성공단 폐쇄 논란 등으로 남북 대치가 고조돼 병사들의 근무가 늘어났을 때였다. 2월 초 박 일병은 근무 도중 후임병에게 “북한을 감시하면 뭐하냐. 전쟁터는 여기 있는데…”라며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며칠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윤일병 집단폭행사망사건 당시 현장검증을 하는 가해자들. 국방부 제공
임 소장은 “주범인 제모 상병과 김모 상병, 임모 일병(당시 계급)은 6월 5군단 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며 “젊고 전과가 없으며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문을 작성했다는 게 양형 이유였다”고 말했다. 임 소장은 “판결문에는 가혹행위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적혀있지 않았다”며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다”고 비판했다. 처음으로 폭행을 한 유모 병장은 인천지방법원에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군 검찰의 항소에 따라 전역한 제 상병은 부산고등법원에서, 나머지는 고등군사법원에서 2심 재판이 진행중이다. 임 소장은 “관할 법원은 마땅히 가해자 전원에게 실형을 선고해 법의 준엄한 심판을 보여줘야 한다”며 “군사법원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누구보다 명예를 중시하고 공정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군인이 군복의 명예를 더럽히는 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군복 아래 억눌린 본능과 권력욕이 잘못된 형태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예비군 훈련이다. 대학 교수도, 일용직 노동자도, 법조인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소총을 질질 끌고 다니는 등 ‘꼴불견’을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소위 ‘막 나가는 행동’을 하고, 현역 조교들이 제대로 제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권력이 가져다주는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군대 조직에서도 높은 지위에 오른 장군이나 병장의 경우 위법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권력자인데….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일탈을 저지른다. 주변에서 제지하지 않으면 일탈의 정도는 더욱 심해지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입대를 앞두고 신체검사를 받는 입영대상자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같은 사건사고는 아들이나 오빠, 동생을 군에 보낸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켜 군의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군 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통한 예방활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방부가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을 살펴보면, 대형 국방이슈가 발생해 그 해결에 몰입하면 예하 부대에서 일탈이 일어나는 패턴이 반복되어왔다. 북한이 도발위협을 하면 “대비태세를 강화하겠다”며 요란하게 홍보를 하면서도 성추문이나 병영 내 가혹행위 등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사과하는 말 한마디 듣기도 힘들다. 그러고도 군인권보호관 설치나 평시 군사법원 폐지 등은 반대하며 외부의 개입을 극도로 꺼리며 이를 ‘군의 순수성 보호’라 칭한다. 
병영도서관에서 독서중인 장병들. 육군 제공
국가 안보는 일본 정찰위성이 찍은 사진이나 미국의 요격미사일만으로는 지킬 수 없다. 군 기강 확립과 인권이 보장되는 병영문화가 갖춰지지 않으면 우리 군은 군대가 아닌 글로벌 방산업체의 무기전시장에 불과하다. 국방부가 사드 배치나 GSOMIA 체결을 따지기 전에 군의 기본인 기강 확립과 병영문화 개선부터 먼저 들여다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