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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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부동산 투자를 위한 변명

‘나는 갭 투자로 300채 집주인이 됐다’, ‘나도 월세 부자가 되고 싶다’, ‘나도 꼬마 빌딩을 갖고 싶다’….

부동산을 공부하겠다며 며칠 전 찾은 서울 시내 한 대형서점 내 반평 남짓한 해당 분야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던 건 돈 버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유혹들이었다. 애초에 내 공부 목적은 투자가 아니라 최근 부동산 부문을 담당하게 돼 기초 지식을 쌓자는 거였기에 이들 책의 목차를 훑어보다 제자리에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김승환 산업부 기자
나처럼 매대에 붙어 책을 들었다 놓았다 하던 한 중년 남성은 ‘나는 부동산 부자다’, ‘나도 부동산 부자가 되고 싶다’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제목을 단 책 대여섯 권을 품 안에 안고 계산대로 향했다.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하기로 치면 석고대죄해야 될지도 모를 철학 전공자인 나도 수요와 공급의 관계는 얼추 알기에, 불현듯 떠오른 건 매대를 가득 채운 부동산 투자 서적 수에 비례하는 ‘부동산 투자 꿈나무’들이었다.

우리 사회엔 이 같은 부동산 투자 꿈나무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있다. 아파트 분양권 전매제한 강화 등 투기 수요 규제를 담은 11·3 부동산 대책을 정부가 발표한 뒤 부동산 시장 상황을 담은 온라인 기사에 달린 댓글엔 부동산 투자에 대한 경멸이 가득하다. 비교적 점잖은 표현인 ‘투기꾼’부터 온갖 욕설까지 부동산 투자를 비도덕적 행태로 치부하고 저주를 퍼붓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동산, 특히 주택은 의식주 중에서도 인간 생활에 필수 요소다. 결과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거품을 형성하게 해 실수요자에게 부담을 가중하는 부동산 투자는 윤리적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여기에 노동에 대한 교조적 시각에 따르면 그 수익이 불로소득이란 점에서 비판은 더욱 거세질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한국의 가계 순자산 중 70% 이상이 부동산이다. 이는 옳든 그르든, 우리나라 경제 상당 부분이 부동산에 의존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부동산 투자는 이 큰 덩치의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이 시장의 일부인 건설업에 종사하며 돈을 버는 이의 수가 지난해 기준 무려 28만5000명이다. 이들의 가족까지 고려하면 부동산 시장에 의존하는 인구는 2, 3배가 더 될 것이다. 건설업뿐일까. 길을 걷다 쉽게 눈에 띄는 부동산 중개업자 모두 이 시장에 생계가 걸린 사람들이다. 투자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부동산 투자가 이들 각각의 생계에 중요한 역할을 떠맡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시장 경제 체제 안에서 살고 있는 이상, 부동산 투자의 이 같은 순기능도 외면해선 안 된다.

대통령의 비선실세가 정부 정책을 미리 입수한 뒤 거액의 투자 수익을 남겼다거나 부산의 한 건설업자가 정치인에게 금품로비를 해 특혜를 얻었다는 등 부동산을 둘러싼 온갖 스캔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안을 거름으로 삼는 현 시장 체제 위에서 조금이라도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대개의 개미 투자자는 경멸 받을 만큼 비도덕적이진 않다.

김승환 산업부 기자  hw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