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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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붓질의 고생이 그림의 진실이다"

다매체시대 전통회화로 승부를 거는 청년작가 허수영
“그리다 보면 흔적은 대상이 된다. 그리다 보면 대상은 재현이 된다. 그리다 보면 재현은 표현이 된다. 그리다 보면 표현은 다시 흔적이 된다. 그리다 보면 그림은 계속 변한다. 그리다 보면 이미지는 상태를 변화시키며 어디론가 간다. 그렇게 그림이 어떤 지점에 도달하면, 나는 그것을 무엇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어떤 모호한 상태로 한 번 더 끌고 가고 싶다. 더 이상 언어화되지 않는 지점에 보다 그림다운 그림이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상들 사이로, 그려진 것들 위로 더는 개입이 불가능할 때까지 계속 침투하듯이 무언가를 그려 넣는다. 그렇게 그리고 또 그려 더 이상 손댈 수 없을 때 비로소 겨우 마치지만 그렇게 끝난 그림도 시간이 지나면 빈틈이 보인다. 그러면 또 다시 시작이다. 그렇게 모자란 무언가를 채우다 보면 이제 다른 그림들이 부족해 보인다. 아… 이 짓거리에는 끝이 없다. 끝없는 붓질의 고생이 그림의 진실이다.”

청년작가 허수영(32)의 고백이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레지던시 , 인천, 청주, 광주로 이사를 다녔다. 잦은 이동은 낯선 곳에 도착하고 정들고 떠나고의 반복이었다. 그러다 보니 머무는 곳에서, 머무는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 그에게 더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작업실 주변 풍경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선 봄에는 앙상한 가지 위에 피어나는 싹들을 그린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그려진 봄의 풍경 위에 무성한 푸른 잎들을 또 그린다. 가을이 되면 여름의 짙은 녹색들을 울긋불긋하게 덧칠하고, 겨울이 되면 그 위로 내리는 눈을 또 그린다. 이렇게 사계절이 한 화면에 누적되면 그림이 끝나고, 또 떠날 시간이 됐다.”

그에게 기억은 사실적이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지만, 추억은 흐릿하고 애매하고 아련하게 느껴진다. 날마다 무언가를 화면에 누적시키는 것은 기억들을 기록하는 과정이다. 그러기에 매일매일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그리려한다. 하지만 계절들이 겹쳐지면서 이미지는 점점 복잡해진다. 그림의 표면도 거칠어져 처음처럼 세밀하게 그리지는 못한다. 그래서 연속된 재현들은 점점 표현적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그 결과, 공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중첩된 풍경과 서로 다른 시간들이 혼재된 순간이 펼쳐진다.

“기억들이 모여 추억이 되듯이, 재현들이 모여 표현이 되듯이, 정지된 공간의 순간들을 모아 흐르는 시간의 모호한 무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신세대 작가인 그가 내년 8일까지 학고재갤러리에서 전시를 갖는다. 다양한 장르의 미술이 범람하는 시대에 전통 회화로 승부를 거는 젊은 작가의 패기를 엿 볼 수 있는 기회다.

회화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플리니우스는 회화의 탄생을 ‘그림자’와 연관했다. 어느 여인이 먼 길을 떠나는 사랑하는 연인을 벽에 세워놓고 그림자의 윤곽을 따라 그린 것이 최초라는 것이다. 이태리 건축가 알베르티는 꽃으로 변신한 것으로 알려진 나르시스가 회화의 장본인이라고 말했다.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 자리에서 굶어 죽었다는 이여기가 있다. 이렇게 물에 비친 모습을 영원히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회화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원본이 아닌 재현된 이미지를 위해 죽어야 했던 이 이야기는 회화의 위상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미술은 20세기 들어 큰 변화를 겪었다. 과학의 발달과 함께 미술 재료와 표현 매체가 무한히 확장하였다. 대표적인 예로는 텔레비전을 통해 영상을 선보인 비디오 아트를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화는 살아남았다. 이는 회화가 인간의 인식과 감각을 손으로 직접 구현할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디지털 정보로 환원, 비물질화되는 와중에서도 캔버스와 물감이라는 물질성으로 구체적인 것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영국 작가 그룹 yBa(young British artists)는 회화를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독일 회화 그룹 라이프치히 학파 등은 회화의 본연적인 행위 자체에 목적을 두며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들은 충격적인 주제로 경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닌 대상의 ‘순수함’ 그 자체를 강조한다. 회화 본질로의 회귀를 주장하며 그들 스스로를 아티스트가 아닌 페인터, 즉 화가로 표현한다.
“내가 자연을 표현주제로 삼은 것은 그것이 자유로운 붓질과 필력을 드러내기에 가장 용이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하루 중 그림 그리는 일 이외의 다른 일을 딱히 하지 않는다는 그에게서 정통회화의 미래를 기대하게 된다. 

편완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