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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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커져가는 '저소득 불안감'…사라져가는 '고소득 기대감'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 속에 예사롭지 않은 ‘분노’와 ‘불안’의 감정이 가득 차있습니다. 이렇게 불안과 분노가 겹겹이 쌓여진 데에는 정치·사회적 요인들이 크게 작용하고 있겠지만, 결국 모든 것이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간과할 순 없습니다. 부유층과 기득권자들이 배를 불리는 사이, 대다수 국민들은 하루하루의 생계를 유지하는데만 급급한 상황입니다. 소득 불평등이 커지고, 평등한 기회보장도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소득 불안정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이같은 양상은 더욱 강해질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그렇다보니 기본적인 저축은 물론 이렇다 할 재테크를 고민할 여유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국민들의 경제적 불안감은 커져가는 반면, 소득 증가에 대한 기대감은 희미해져 가고 있다.

10명 중 7명이 현재 자신의 경제적 수준은 불안하다고 답했다.

단 20%만이 한국사회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년 실질소득은 올해와 비슷하거나,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가계 소비 및 투자’ 관련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소비자 10명 중 7명이 현재 자신의 경제적 수준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지난해보다 경제적 불안을 겪는 소비자들이 보다 증가한 것으로, 특히 여성과 40대 소비자의 경제적 불안감이 상대적으로 더욱 큰 모습이었다. 또한 자신의 계층수준을 낮게 평가할수록 경제적 불안감이 훨씬 크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전혀 불안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별로 불안하지 않다고 느끼는 소비자들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10명 중 7명 "작년보다 저축하기 더 힘들다"

소비자들의 경제적 어려움도 더욱 커진 모습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56.7%가 작년에 비해 올 한 해 동안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이 증가했다고 평가하였는데, 이는 지난해 조사에 비해 더욱 증가한 결과다.

한국 경제의 침체가 개별 소비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성별과 연령에 따른 큰 차이 없이 경제적 어려움의 증가를 호소하는 목소리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다만 자가계층 평가에 따라 경제적 어려움의 체감 정도가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우리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이 상당하다는 해석을 해볼 수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이 커진 만큼 저축도 쉽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10명 중 7명(68.2%)이 작년에 비해 올 한 해 동안 저축을 하기 힘들었다고 응답한 것이다. 작년 조사와 비교했을 때 저축의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며, 역시 계층수준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이고 있었다.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앞으로도 저축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부정적인 전망이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저축을 통해 소득환경이 개선되고, 가계투자가 이뤄지는 선 순환구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연령이 높고 계층수준을 낮게 평가할수록 앞으로 저축이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두드러졌다.

◆"부자될 기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10.1% 불과

물론 부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만큼은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전체 10명 중 9명(88%)이 부자가 되고 싶다는데 동의했으며, 이런 바람은 성별과 연령·계층수준에 관계없이 동일했다.

그러나 언젠가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전체 응답자의 20%만이 열심히 노력하면 우리나라에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한국사회에서 부자가 될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의견은 10.1%에 불과했다. 또한 직장생활만 열심히 해도 큰 돈을 모을 수 있다는 의견도 단 6.7%에 그쳤다.

이런 인식들을 반영하듯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한 현재 삶의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 소비자 상당수의 생각이었다. 당연히 자신의 계층을 낮게 평가할수록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현재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다만 10명 중 3명은 로또에 당첨돼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어, 부의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전혀 없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년 실질소득, 올해와 비슷하거나 줄어들 듯

소비자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해볼 수 있었다. 내년 소득변화 가능성을 전망해본 결과, 소득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 것이다. 먼저 ‘총소득’과 관련해서 10명 중 7명 정도가 올해와 비슷하거나, 총소득이 줄어들 것 같다고 내다보고 있었다.

비록 총소득이 늘어날 것 같다는 의견이 줄어들 것 같다는 의견보다는 다소 많았지만, 지난해 조사에 비하면 총소득 증가에 대한 기대감이 더 줄어들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소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실질소득’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낮은 수준이었다. 내년에는 실질소득이 늘어날 것 같다는 의견이 22.7%에 그쳤으며, 소비자 대부분은 실질소득이 올해와 비슷하거나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실질소득의 감소를 예상하는 시각은 40대와 계층 저평가자에게서 보다 두드러졌다. 미래 소득에 대한 시각은 훨씬 부정적이었다. 한국사회에서 만족할만한 소득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전체 71.9%가 가능성이 없다고 바라본 것으로, 여성과 30대의 부정적인 시선이 좀 더 강하였다. 향후 만족할만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가진 소비자는 5.7%에 그쳤다.

◆돈 걱정 없는 최소 자금 10억~15억원 가장 많이 꼽아

한국사회에서 중산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5억원 이상의 현금자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가까이가 중산층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현금자산의 기준으로 10~15억원(23.3%) 내지 5~10억원(22.6%)을 꼽은 것으로 △1억원 미만(1.6%) △1억~3억원(10.2%) △3억~5억원(15.6%) 등 5억원 미만의 현금자산으로도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의견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했다.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자산으로도 10억~15억원(19.9%) 정도를 생각하는 시각이 가장 많았으며 △1억~3억원(18.5%) △5억~10억원(16.2%) △3억~5억원(12.5%)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돈이 없어도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의견은 단 0.6%에 불과했다. 여윳돈이 생겼을 때 하고 싶은 활동으로는 ‘여유로운 생활’(69.2%, 중복응답)을 첫손에 꼽는 소비자들이 가장 많았다. 또한 여행(57.8%)을 꿈꾸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으며 △내 집 마련(48.1%) △취미생활의 향유(38.1%) △부동산 투자(29.1%) △자동차 구매(18.5%)도 여윳돈이 생겼을 때 하고 싶은 활동이었다.

중장년층에서는 여유로운 생활과 여행을 많이 바랬으나, 젊은 층에서는 여윳돈이 생길 경우 내 집 마련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는 점에서 세대별 인식 차이도 살펴볼 수 있었다. 여윳돈으로 내 집 마련을 하고 싶다는 바람은 미혼자와 1인가구, 자가계층 저(低)평가자에게서 더 두드러졌다.

◆외식비 부담스러워서 가장 많이 줄여

한편 올 한 해 동안 소비자들이 가장 부담스럽게 생각한 지출항목은 외식비였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 역시 외식비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특히 평소 외식 소비가 많은 젊은 세대가 부담감을 더욱 많이 느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식비와 함께 △여행비(32.9%) △통신비(32.7%) △병원비(30.5%) △경조사비(28.2%) △보험료(27.9%) 등도 소비자들이 부담스럽게 느끼는 대표적인 지출 항목들이었다. 작년에 비해 지출을 가장 많이 감소한 항목도 외식비였다.

다만 평소 외식비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젊은 세대가 아니라, 중장년층이 오히려 외식비의 지출을 많이 줄였다는 점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20~30대에게 외식은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활동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해석해볼 수 있다.

작년에 비해 △의류(32.9%) △여행(26.7%) △신발·가방(18.1%) 비용을 줄였다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았다. 젊은 층은 의류와 신발·가방을 구입하는데 쓰는 비용을 주로 많이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대비 지출이 가장 많이 증가한 항목으로는 △외식비(17.9%·중복응답) △주식비(17.5%) △병원비(17.3%) △자녀교육비(16.4%) △여행비(15.4%) △통신비(14.5%) △교통비(13.5%) 등 다양한 항목들이 꼽혔다.

앞서 가장 많이 부담스러워하고, 실제 지출을 줄인 소비자도 많았던 외식비는 올 한해 지출을 늘린 소비자 역시 가장 많았던 항목으로, 특히 젊은 층의 소비 증가가 뚜렷했던 특징을 보였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