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 다음날인 10일 낮은 기온과 강풍에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집계인 오후 8시30분 기준 광화문 80만명, 지방 24만명 등 100만여명의 시민들이 주말집회에 참가해 촛불을 밝혔다.
이번 7차 촛불집회가 이전 집회와 다른 점은 분위기였다. 엄숙하고 분노가 깃든 모습보다는 축제의 장에 가까웠다.
저마다 촛불을 구비한 시민들은 퍼포먼스 대열 등에 합류하며 신명난 모습을 보였다. 양초나 LED초 외에 나무기둥 끝에 초가 달린 촛불봉, 머리에 착용할 수 있는 촛불머리띠 등도 등장했다.
광장 곳곳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밝고 경쾌한 음악이 자주 흘러나왔다. '악동'이란 별명이 함께하는 23년차 힙합그룹 디제이 디오시(DJ DOC)는 이날 오후 4시10분경 촛불집회 사전문화제에 나와 '디오씨와 함께 춤을', '삐걱삐걱', '알쏭달쏭' 등의 히트곡을 불렀다.
최순실 분장으로 화제를 일으킨 '예술행동단 맞짱' 회원들은 이날 오후 2시 광화문 광장에서 퍼포먼스를 벌였다. 죄수복을 입고 포승줄에 묶인 최순실씨와 박 대통령으로 분장했다.
촛불집회 현장에 친구들과 나왔다는 김모(17)군은 "이전 촛불집회는 약간 심각했다고도 하던데, 오늘은 편안한 분위기 같아서 부담이 덜 하다"며 "지금 이 순간을 즐기다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부 박모(44)씨는 "요즘 초등학생들이 시험지에 답으로 '최순실'을 적는다고 들었다"며 "어제 탄핵안이 가결된 만큼 오늘 촛불집회는 아이들과 비교적 편하게 보낼 수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오후 7시 시민들의 저항행동 중 하나인 1분 소등 행사 이후에는 '맨발의 디바' 가수 이은미씨가 광화문 광장 문화행사 무대에 올랐다. 우선 애국가를 무반주로 제창했다. 이에 시민들도 함께 열창했다.
이씨는 "크게 외쳐보고 싶었다"며 "대한민국이여 새롭게 깨어나라"라고 외쳐 호응을 이끈 뒤 '가슴이 뛴다', '비밀은 없어' 등을 연이어 공연했다. 그는 시민들의 "이은미" "앵콜" 등을 연발에 힘입어 히트곡 '애인 있어요'를 부른 뒤 "지치지 맙시다. 사랑합니다 여러분"이란 말을 남기고 무대를 떠났다.
서울 외 지역에서도 탄핵안 가결을 자축하고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이 멈추지 않았다.
광주에서는 박근혜 퇴진 광주시민운동본부 주최로 금남로 일대에서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새로운 나라 우리의 힘으로'라는 글귀가 적힌 폭 25m, 길이 20m의 대형 현수막을 전일빌딩 외벽에 내걸고 축포를 터뜨렸다. 이어 대형 태극기를 들고 1시간 동안 금남로 일대를 행진했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텃밭이었던 대구·경북지역에서도 박 대통령 퇴진과 새누리당 해체를 촉구하는 집회가 이어졌다. 부산 서면에는 주최 측 추산 10만명(경찰 추산 1만명)이 모여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이에 반해 보수단체는 탄핵안을 가결한 여당과 야당을 모두 규탄하며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맞불집회를 열었다. 탄핵안 가결이라는 초유 사태의 충격 탓인지 이날 집회 규모는 전보다 한층 커졌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보수단체는 이날 오전 청계광장에서 '헌법수호를 위한 국민의 외침' 집회를 연 뒤 대학로 마로니에 광장 앞까지 행진해 2차 집회를 이어갔다.
참가자들은 '속지 마라 거짓선동. 자유대한 수호하자', '고맙다 탄핵찬성. 덕분에 5000만이 깨었다', '이정현 파이팅' 등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여당과 야당, 촛불집회 시민, 언론 등을 모두 비판했다.
주최 측은 100만명이 모였다고 주장했고, 경찰은 순간 최다 운집인원을 4만여명으로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참가자는 집회 이후 광화문 방면으로 이동했다가 촛불집회 참가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경찰이 양측을 격리해 큰 불상사는 없었다.
경찰은 이날 서울 시내에 경비병력 228개 중대 1만8200여명을 배치해 집회 관리와 안전사고 예방에 나섰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