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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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역사적 현장 잘 봐두렴"… '촛불'로 민주주의 배우는 아이들

다양한 연령대 자녀와 광장 찾은 부모들 / "어릴 땐 이런 문화 없어… 좋은 교육 기회" / 서울교육청 직원 40명 학생들 지켜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커서도 이런 역사적 순간을 기억하게 해주려고요.”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된 다음날인 10일 서울 광화문 광장.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어느덧 7번째로 열린 촛불집회에는 영하의 강추위에도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유모차를 탄 어린이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자녀와 함께 한 부모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부모들은 민주주의의 현장을 가르쳐주기 위해 함께 나왔다며 이 같이 입을 모았다.

경북 의성에서부터 8시간이나 걸려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는 문모(48)씨는 “아들이 아직 19개월 밖에 안 됐지만 광화문의 분위기를 꼭 보여주고 싶었다”며 “대통령 탄핵 가결까지 밀어붙인 건 우리 시민의 힘이고, 앞으로도 시민이 계속 관심을 가져야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가르칠 것”이라고 다짐했다.

9개월 된 딸을 안고 나온 안모(30·여)씨는 “요즘 집회 시위는 문화 행사같은 성격도 강한 거 같아 가족 단위로 참여하기 좋다”며 “오늘을 기념하려고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나중에 아이한테 보여주면서 ‘우리가 이런 역사적 순간에 참여했었구나’라고 얘기할 것 같다”고 말했다.

두 딸의 손을 꼭 부여 잡은 채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보던 성모(46)씨는 “내가 어릴 때는 이런 문화 자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부모님이 이렇게 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어릴 때부터 시민 의식을 길러주면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서는 우리나라가 더 나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아들, 딸과 함께 나온 재일교포 3세 박모(43·여)씨는 “이런 경험은 일본에서 하기 힘든 경험”이라며 “아이들과 역사적 순간을 함께한다는 게 정말 의미있는 일 같다”고 털어놨다.

꼭 자녀와 함께 하지 않았더라도, 아이들을 위해 광장을 찾은 어른들도 있었다. 교육청이나 시민단체 소속으로 집회 현장을 찾은 이들은 아이들이 혹시나 위험에 처하거나 비상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주변을 지켰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차 촛불집회 때부터 40여명 규모의 인력을 파견해 중·고교생들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 이날 역시 보건교사 20명과 장학사, 행정직원 등 20명 등 총 40명이 주말을 반납하고 집회 현장을 지켰다.

동화면세점 앞에서 ‘중고생 혁명’ 소속 학생 20여명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전명훈 시교육청 노동인권전문가는 “오늘도 다행히 아이들에게 위험한 상황이나 비상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며 안도했다. 그는 이날 아이들을 따라 종각에서 을지로로, 다시 시청을 지나 광화문과 청운동까지 거리를 누볐다.

유인숙 시교육청 교육정책국 장학관은 “우리 교육청이 강조하는 ‘교복 입은 시민’이라는 말처럼 아이들이 학교 공부만으로는 배우기 힘든 민주주의를 실제로 배울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주영·권지현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