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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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숨은 주역들] ① 의료 지원단 이끄는 대한전공의협의회 기동훈 회장

[편집자 주]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촛불 민심’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7주에 걸쳐 매주 토요일 거리로 나와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한 시민들이 탄핵의 동력이 됐다는 것.

이들처럼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집회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게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묵묵히 땀 흘린 또 다른 시민들이 적지 않다. 바로 자원봉사자들이다. 촛불집회의 숨은 주역인 이들의 인터뷰를 시리즈로 싣는다.

“‘고맙습니다’란 말 한마디를 들으면 힘이 납니다.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이 그저 다치지 않고 무사히 귀가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서울 광화문광장 남단의 의료 지원단을 이끌고 있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기동훈(31) 회장은 10일 이같이 말하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일분일초를 다투는 응급실에서는 의사나 환자, 환자 보호자 모두 서로 고맙다고 할 여유가 없는데 집회 현장에서 간단한 의료 조치를 해 줘도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면 보람이 크다는 설명이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3년차 전공의인 기 회장의 양 엄지손가락 끝에는 의료용 장갑 장시간 착용으로 인한 물집 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전국 인턴과 레지던트 약 1만7000명으로 구성된 대전협은 지난달 12일 3차 집회 때 서울광장에서 의료 지원단을 처음 운영했다. 4차 집회 때부터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 옆으로 자리를 옮겨 5주째 매주 토요일 오후 3∼10시 촛불 시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고 있다. 기 회장을 비롯한 젊은 의사와 의과대학 학생 등 10여명으로 운영된다. 의료 지원단에는 각종 구급상비약은 물론, 자동 제세동기(AED)와 체온·혈당·혈압 측정기 등 의료 기기도 구비돼 있다.

서울 광화문광장 의료 지원단을 이끌고 있는 대한전공의협의회 기동훈 회장이 지난 10일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귀가했으면 하는 마음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3차 집회가 열리기 전 서울광장 일대에 100만명이 모일 것이란 말을 듣고 의료 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한곳에 모이면 사고 등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차 집회 때 갑자기 쓰러진 한 시민을 119 구급대에 인계한 것 외에 그간 위급한 상황은 다행히 없었습니다.”

의료 지원단을 찾는 시민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기 회장은 “대부분 두통이나 복통, 소화불량 같은 증세를 보이거나 가벼운 외상이 있는 경우”라면서도 “성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주의한 아이들이 촛농으로 인한 경미한 화상으로 지원단을 찾는 일이 잦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촛불집회의 필수품을 구하기 위해 의료 지원단으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전협은 매주 자체적으로 마련한 양초와 종이컵 700∼800개를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10일 7차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의료 지원단이 있어 든든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지선(45·여)씨는 “딸과 함께 집회에 나왔다가 왼쪽 발목을 접질려 응급처치를 받으려고 의료 지원단을 찾았다”며 “파스를 뿌리니 한결 나아진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이어 “광장 한복판에 의료 지원단이 있어 안심이 된다”면서 “날도 추운데 시민들을 위해 봉사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최모(29)씨는 “촛불집회에 3차례 나왔는데 의료 지원단이 항상 있는 모습을 보니 존경스럽다”며 “오늘은 의료 지원단에서 양초와 종이컵도 받아 마음이 더 따뜻해진다”고 고마워했다.

대전협이 주축이 된 의료 지원단은 촛불이 꺼지지 않는 한 매주 토요일 광화문광장을 지킬 계획이다. 기 회장은 “국민들에게 의료 지원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의료 지원단을 운영할 것”이라면서 “‘최순실 게이트’가 의료계에서 의료 게이트라고 불릴 만큼 문제가 많은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의사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박진영·이창훈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