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은 A상가의 소유자인 을로부터 상가를 임차한 후 보증금을 모두 지급하고, 임대차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아 대항력을 취득했다. 한편, 을은 병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면서 상가를 담보로 제공하고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었는데, 대출 당시 갑은 을의 부탁에 따라 병에게 ‘이 상가에 무상 거주함을 확인하고, 만일 기재 내용과 실제가 상이해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 전적으로 민형사상 책임을 질 것을 확약한다’는 취지의 ‘무상 거주확인서’를 작성해 주었다. 이는 상가의 담보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후 을이 대출 원리금을 변제하지 못하자, 병은 상가에 관해 임의경매 신청을 했고, 2012년 6월 13일 법원으로부터 임의경매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경매절차에서 상가의 소유권을 취득한 정은 갑에게 상가의 명도를 요구했으나 갑은 자신이 대항력을 가진 임차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임대보증금을 받기 전까지는 상가를 명도해 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정은 갑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은 갑의 주장을 받아들여 정의 청구를 기각했으나, 대법원은 하급심으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위 상가에 관한 임의경매 절차에서 집행관이 작성해 경매법원에 제출한 현황조사서에는 갑이 이 사건 상가의 임차인이라는 사정이 현출돼 있으나, 한편으로 근저당권자인 병이 경매법원에 갑이 작성한 무상거주확인서를 첨부해 권리(임차인) 배제 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으므로, 만일 정이 경매절차에서 무상거주확인서의 존재를 알고 그 내용을 신뢰해 매수신청금액을 결정했다면, 임차인인 갑이 정의 인도청구에 대해 대항력 있는 임대차를 주장해 임차보증금 반환과의 동시이행을 항변하는 것은 금반언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허용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거절하기 어려운 부탁을 받는 경우가 많다. 위 사건에서도 임차인인 갑은 임대인 을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법률관계가 당사자들을 벗어나 제3자와 관계를 맺게 될 때는 그 제3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법원칙이 기능해 뜻하지 않은 손해를 보게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부탁의 수락 여부는 이러한 점을 고려해 신중에 신중을 기해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변환철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