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 |
공구별로 책임을 맡고 있는 하도급 현장소장들이 현장사무실에 모였다. 이들은 토공, 포장 등을 전문으로 하는 건설업체에 소속되어 있다. 두툼한 남색 계통의 잠바와 파커에는 여지없이 흙이나 시멘트가 묻어있었다.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원도급 업체가 민원이나 하자를 모두 떠맡긴다든지, 이것저것 다 시켜놓고 돈을 제대로 안 준다든지, 기술도 없는 원도급업체의 직원이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등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현장인력을 구하기가 힘들다고 투덜거렸다. 인력을 구해봐야 기술이 없어 며칠 동안 현장에서 따로 교육해야 겨우 활용할 수 있는 형편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외국인 근로자는 틈만 나면 매일 일할 수 있는 제조업체로 옮기려 해서 애를 먹는다고 했다. 건설현장에서는 날씨가 나쁘거나 공정상 일이 없는 경우 일당을 받지 못한 채 공쳐야 하기 때문이다. 조용히 있던 한 현장소장이 한마디 던졌다. “여기 있는 소장들 중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이리저리 샌드위치로 시달리고, 봉급도 점점 줄어들고….”
건설은 대부분이 발주자의 주문에 의해 도급으로 이루어지고, 다양한 전문 분야가 하도급으로 참여하게 된다. 완성될 때까지 긴 기간 동안 변수도 너무 많다. 따라서 기업이 스스로의 생산계획에 따라 경영할 수가 없다. 그저 불특정하게 발생되는 주문에 피동적으로 귀를 기울여야 할 뿐이다. 항상 발주자, 하도급 업체의 경우 원도급 업체까지의 눈치를 보아야하는 형국에 처한다. 꼿꼿한 그 누구와 달리 매번 여기저기 자세를 낮추어야만 하는 격(格)이 떨어지는 듯한 직업을 자식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일지 모른다.
어쩌면 건설산업의 격을 새롭게 창출할 큰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먼저, 시장 실패 경험을 주었던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물결이다. 더불어 사는 윤리와 가치가 강조되고 있다. 독특한 생산체계의 건설산업에 절실한 서로간의 상생과 공정한 거래질서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삶을 완전히 바뀌게 할 것이라는 4차 산업혁명이다. 건설산업이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할 경우 분명 새로운 형태의 산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지난달 발효된 파리기후협정에 따른 녹색물결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이탈을 운운하고 있지만, 도도한 녹색물결이 건설산업을 적시며 새로운 격으로 인도해 나갈 것이다.
건설산업은 인간의 삶의 공간과 시설물을 생산해 내는 일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되어야 할 산업이다. 어찌 보면 참으로 공공 기여도 높고 창조적이며 아름다운 산업이기도 하다. 차가운 겨울날 오후의 해처럼 그대로 메말라가며 뉘엿뉘엿 저물어갈 수 없다. 이상의 ‘날개’에서 희망과 야심이 말소되었던 33번지를 탈출하려 듯이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서명교 대한건설정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