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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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의 '책읽기 세상읽기'] “우리가 기꺼이 복종하고자 하는 헌법은 어떠해야 하는가?”

(4)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 - 헌법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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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한계를 가진 55명에 의해 200년 전에 작성되었고, 실제로는 39명만이 서명했으며, 그들 중 상당수가 노예소유주였고, 겨우 13개 주에서, 이제는 모두 죽고 잊혀진 지 오래된 2000명도 안 되는 적은 수가 투표하여 비준한 문서에 우리는 무엇 때문에 오늘날까지 얽매여 있어야 하는가?”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저서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 서두에 내놓은 질문이다.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우리 미국인들은 왜 미국 헌법을 지지해야 하는가?” 도발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질문이다. 질문은 꼬리를 문다. “미국 헌법이 시민들을 위해 잘 기능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어떤 기준에서 그렇다는 것인가? 구체적으로, 미국 헌정체제는 오늘날의 민주주의 기준에 얼마나 잘 부합하고 있는가?” “다른 모든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은 미국 헌법과 매우 다른 헌정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왜 그런가?”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는 이런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 쓴 책이다. 그 목적은 “헌법 그 자체에 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도록 자극하는 데 있다”고 달은 설명한다.

답변을 들을 차례다. 달에 따르면 1787년 헌법제정회의에 참석한 대표들은 대다수 시민들이 공화국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공유하고 있다고 확신했기에 공화국 형태의 정부 외에 다른 선택을 하지 못했다. 군주제에 호감을 가진 대표는 거의 없었고, 당시 미국에서는 귀족이 누구인가에 대한 합의가 불가능했다. 프랑스 정치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19세기 초 미국을 방문한 뒤 쓴 ‘미국 민주주의’ 첫머리에서 “미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나의 관심을 끌었던 새로운 현상들 중에서, 삶의 조건이 전반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만큼 강렬하게 나를 놀라게 한 것도 없었다”고 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아울러 13개 주가 이미 존재하는 데다 훨씬 더 많은 주들이 편입될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연방제 공화국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달은 “유일하게 쟁점이 된 문제는 각 주들이 중앙정부로부터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가져야 할 것인가였다”고 했다.

미국의 대통령 선출 방법은 지금도 논쟁거리다. 달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신봉하는 시민이 수용할 만한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마 대통령 선출 방법의 문제보다 더 완벽하게 실패한 부분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각 주의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가 주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제도 탓에 대선 후보들이 경합 주(swing states)에서만 치열하게 경쟁하며, 제3당 후보들이 선거인단 표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최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에게 전체 득표 수에서 뒤지고도 주별 선거인단 확보에서 앞서 당선을 확정지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

달은 이제 질문을 바꿔볼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기꺼이 복종하고자 하는 헌법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나는 민주 시민에게 있어 유일하고도 정당한 헌법이란 민주적 목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정된 헌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미국 헌법은, 합리적인 동의에 기초하여 채택했고 유지되고 있는 법률과 정부정책하에서, 정치적으로 평등한 시민들이 스스로를 통치할 수 있게 하는, 최선의 디자인이어야 한다.”

달은 200여년에 걸쳐 급속히 확산된 민주주의를 정치적 평등과 관련해 설명한다. “1900년 당시 독립국으로 인정할 만한 나라는 48개국이었다. 이들 중 8개국만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제도를 갖추고 있었으며, 뉴질랜드만이 여성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는 민주제도가 한 나라에 깊이 뿌리내릴수록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와 자유, 기회 또한 그 나라에 깊이 뿌리내리게 된다는 사실을 목도해 왔다. 한 나라의 민주 정부가 성숙하면 할수록,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고 강조한다.

달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와 정치적 평등을 존중하는 사람들 속에서 헌법의 목적은 시민들 사이의 정치적 평등을 강화하는 정치제도, 그리고 정치적 평등과 민주 정부가 존속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그 모든 권리, 자유, 기회가 유지될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 헌법과 그 문제점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활성화하는 한편, 미국 헌법의 한계 내에서 보다 많은 정치적 평등을 달성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이제 한국 헌법의 문제점을 논의할 준비를 할 때다. 헌법은 국가통치체제와 국민 기본권 보장에 관한 근본 원칙을 규정한 것이다. 정치학자 최장집은 이 책 한국어판 서문에서 “헌법의 문제는 곧 민주주의의 문제이고, 그것은 다름 아니라 정치의 문제로 집약된다”면서 “헌법의 제정 또는 개정은, 한 사회의 정치적 제도를 디자인하기 위한 목적의식적 노력의 결과이며, 이를 둘러싼 광범한 논의와 국내 중요세력들 사이의 정치적 또는 사회적 협약의 산물”이라고 했다. 나아가 미국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민주주의는 가능한가’에서 “헌법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논쟁을 법적·정치적 원칙이라는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최근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상황이다. 촛불집회에 드러난 민심은 우리나라의 시스템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꿔나가자는 것이다. 우리 헌정체제에 대한 성찰 차원을 넘어선다. 탄핵심판이 마무리되고 어느 시점에선가 개헌이 논의될 때는 이런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박완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