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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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현칼럼] 사회문제의 과학기술적 해답

한국 사회 저성장·양극화 늪 빠져
과기 목표는 지속가능 해법 찾기
연구도 수요자 입장서 설정돼야
사회 메가트렌드 흐름 읽어내길
2016년은 과학기술과 연관된 사회 이슈가 어느 해보다 많았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알파고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자율주행 자동차, 가습기 살균제, 초미세 먼지, 갤럭시 노트7 배터리 폭발, 북한의 5차 핵실험, 한반도 지진, 최근 논의가 활발한 4차 산업혁명까지 언뜻 떠오르는 이슈만 해도 굵직굵직하다. 국내 대기업들이 대규모 투자에 나선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통신기술을 바탕으로 운전자가 외부와 자유롭게 연결)도 정보통신기술(ICT)의 혁명적 발전 덕분에 관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여러 기관과 전문가들이 사회 현상을 관찰하고 제시하는 메가트렌드는 대부분 이러한 과학기술 이슈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과학기술은 고령화사회, 기후변화, 에너지혁명, 초연결사회 등 현대 사회의 거대한 시대 조류를 형성시키는 핵심 동력이다. 과학기술이 새로운 사회 문제의 직접적 원인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그 문제의 해결 역시 과학기술에 의지해야 하는 경우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물론 정책과 제도, 문화의 변화와 공공 인식의 개선도 중요한 해법이 된다. 하지만 그 변화 과정에서도 과학기술의 도움이 필요하다. 메가트렌드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통제하기 위해 국가와 개인의 과학기술 역량에 투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문승현 광주과학기술원 총장
사회적으로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저성장의 늪에 빠지고 있다. 일자리는 늘지 않고, 경제적·사회적 양극화는 심각해지고 있다. 저성장 자체가 한두 국가의 경제 정책의 실패라고만 볼 수 없는 것이 실물경제의 공급 과잉에 따른 세계 경제 환경의 변화가 가져온 공통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한국사회는 이 변화에 적절하게 준비하고 있는가.

저성장 시대의 핵심 가치는 ‘지속가능성’이다.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목표도 메가트렌드가 제기하는 여러 사회문제의 지속가능한 해법을 찾아내는 데 있다. 과학 문명 시대의 과학기술은 사회 이슈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과학기술이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한 채 일부 전문가들끼리만 경쟁하는 학문에 머문다면 더 이상 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과학기술인을 위한, 과학기술인만의 경기가 돼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제 연구·개발의 목표는 연구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수요자의 입장에서 설정돼야 한다. 연구의 수행과정이나 평가는 연구자의 자율을 존중하는 방향에서 혁신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문제의 선정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고 도전적이라야 한다.

이를 위해서 과학기술인들도 사회의 큰 흐름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메가트렌드는 사회문제이기도 하지만 문제를 풀어가는 해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에너지 기술로 해결하려는 노력, 노인 문제를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IoT)으로 해결하려는 시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첨단 지능형 공장) 구축도 인구절벽을 극복해 가는 자연스러운 산업의 형태가 될 수 있다. 과학기술인들은 이러한 메가트렌드와 관련한 새로운 사회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저성장 시대의 국민들은 국가가 지원한 연구개발에서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 어떤 혜택으로 돌아올 것인지 이전보다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있다. 국가가 주도하는 과학기술 연구·개발은 근본적으로 국가의 기능을 개선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과학기술 교육도 한정돼 있는 좋은 직장을 찾아주는 것만이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새로운 직업을 만들고 신산업과 기업을 일으킴으로써 변화하는 경제사회의 선구자적 모습을 보여야 한다. 새해에는 국가와 인류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경제 구조를 만들어 가는 과학기술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문승현 광주과학기술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