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재난 수준으로 심각해진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 속에서 농림행정을 맡고 있는 고위 당국자의 말이다.
정부는 AI 위기경보를 심각단계로 격상하고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이다.
전국 시군 지자체는 외국인을 비롯해 인력을 급히 구해 방역업무를 맡기고 있다.
현행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령에 따르면 현장 방역업무 인력은 가금류 사육 농가수 기준으로 300가구 미만 시 1명이고 이후 300가구마다 0.5명씩 추가 투입한다. 1200가구 이상으로 늘어나면 3명을 투입해야 한다. 최근 상황은 시군 지자체 한 곳당 최소 2명이 필요한 상황인데 평균 1.2명꼴에 그치고 있다.
정부 내에서는 부족한 인력 보충을 위해 군병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가 한사코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최근 정부 합동 대책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으나 국방부 반대로 흐지부지됐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군에서는 자녀를 군대에 보낸 부모들 반대가 너무 심해 현장 투입을 할 수 없다고 한다더라”면서 “다만 초소운영 등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군 측이 장병의 AI 방역 현장 투입을 극구 반대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① 장병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AI 발생 농가 500m 이내 관리지역 농장의 가금류와 알을 원칙적으로 살처분한다. 500m~3km 보호지역 내에서도 발생 우려가 있으면 예방적으로 살처분하거나 폐기한다. 지난달 16일 첫 AI 의심 신고가 있은 뒤 35일 만에 닭과 오리 등 가금류 2000만 마리가 살처분되었다.
살처분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닭과 오리를 소각하거나 고열 또는 가스로 폐사시킨 뒤 매몰처분하는 식이다.
군 측은 과거 방역현장에 투입된 장병이 나중에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한다. 살처분 과정에서 닭 등이 죽어가는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장병 부모들이 방역현장 투입을 거세게 반대하는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언제든지 전쟁터에 투입될 군 장병이 가금류 살처분 현장도 견딜 수 없는 현실을 개탄해 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본은 자위대가 살처분 현장에 투입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되어 있고 사회적인 인식도 이를 용인하고 있다.
한 예비역 육군 소장은 “요즘 군이 나약해져도 너무 나약해졌다”면서 “군 부대에서 장병이 물에 빠지면 자기네가 구하지 않고 119를 부른다고 하더라”고 개탄했다.
② 장병의 AI 감염이 우려된다
다른 이유로는 방역 현장에서 장병이 감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 거론된다. 방역복과 장갑, 마스크 등을 착용하고 작업하지만 불안감을 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방역당국은 지금까지 방역 과정에서 AI에 감염된 인력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을 들어 군 측의 지나친 우려라고 지적한다. 살처분 인력은 몇 일 단위로 현장에서 빼내 AI 인체감염 예방물품인 항바이러스제(타미플루)를 복용시켜 경과를 지켜보는 등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경규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방역 현장에서 AI 매뉴얼인 SOP만 제대로 지키면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 “조기에 AI를 제압하기 위한 군 인력 투입이 아쉬운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2003년 국내에서 첫 발생 이후 2, 3년 주기로 나타나다가 2014년부터는 매년 되풀이하는 AI, 방역을 위한 총체적인 시스템 점검이 필요한 시기다.
박희준 논설위원 july1st@segye.com